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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운의 人사이드] ‘Go’종우 “2019년 묻고 더블로 간다”

등록일 2019.12.04 16:15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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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병정 기자

 

[개근질닷컴] “몸치, 박치인 내게 보디빌딩은 꼭 맞는 운동이다”

 

올해 보디빌딩 8년차인 고종우는 대학 시절, 배트민턴을 전공했다. 하지만 몸치였던 그에게 배트민턴은 쥐약이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바로 보디빌딩. 하지만 그 길도 쉽지 만은 않았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입상은커녕 수없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사실 이만하면 포기할 만도 하다. 실제 ‘하지 말자. 어차피 안 될 텐데 대회 나가지 말자’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는 고종우.

 

“눈떠보면 어느새 무대에 올라가 있더라(웃음). 마치 ‘중독’된 것 같다”

 

포기하고 싶던 그 순간에도 노력한 만큼 결과로 돌아오는 보디빌딩이 너무 좋았던 고종우는 결국 지난 2016년 첫 체급 1위를 거머쥐었다. 올해는 생애 첫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등 개인 커리어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내년엔 올해 성적을 묻고 더블로 가겠다”

 

2020년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늘 그래왔듯 정진하겠다는 *‘Go’종우.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본다.*카지노 용어인 ‘Go’는 올인(all in)을 의미한다.

 

go on (공연을) 시작하다 / (무대에) 나오다

 


▲ 사진=고종우 SNS

 

자기소개 부탁한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고 있는 93년생 고종우라고 한다. 직업은 트레이너다. 20살 때 체육 전공으로 대학에 갔는데 담당 교수님이 이쪽 분야를 추천해 주셔서 지금까지 몸담고 있다.

 

보디빌딩 경력은

 

8년 정도 됐다.

 

얼추 대학에 가서 보디빌딩을 시작했겠다

 

1학년 1학기 땐 전공이 배드민턴이었다. 그런데 막상 배드민턴을 해보니 민첩성도 필요하고 리듬이란 게 중요하더라. 내가 워낙 몸치, 박치라 그런지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웃음). 그래서 2학기 때 보디빌딩으로 전향했다. 보디빌딩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따라온다’는 게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보디빌딩에 푹 빠졌다.

 

본인이 몸치, 박치라고 했는데 웨이트 할 땐 문제가 되진 않았나

 

평소 내 음악 취향(?) 때문인지 크게 문제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운동할 때 신나는 음악 위주로 듣는데 개인적으론 발라드만 듣는다. 발라드 리듬이 운동할 때 내겐 딱 맞더라.

 

즐겨 듣는 플레이 리스트는

 

에이치코드(H:CODE)란 발라드 가수가 있는데 최근에 가장 즐겨 듣고 있다. 가수 홍보는 아니다(웃음).

 

대학교 전엔 운동 경력이 따로 없나


중학교 때부터 몸이 되게 말라서 홈트레이닝 위주로 혼자서 운동을 했다.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매일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땐 체대 준비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달려가서 평행봉이랑 턱걸이를 했다. 그리고 방학하면 헬스장 등록해서 운동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때 멋모르고 웨이트 할 때가 가장 재밌었던 것 같다.

 

go in for something (대회에) 참가하다

 


▲ 지난 2012년 춘계대회 대학부 보디빌딩 무대에 오른 고종우. 생애 첫 대회의 결과는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사진=개근질닷컴 DB

 

대학 때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는지

 

2012년 춘계대학보디빌딩대회였는데 그게 내 생애 첫 무대였다. 전공 교수님이 추천해서 나가게 됐는데 성적은 처참했다. 사실 멋도 모르던 때라 참가 전엔 자신만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더라(웃음). 

 

성적은?

 

예선 탈락했다. 대학부여서 같은 나이 또래의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나올 거라 착각한 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춘계 대회 자체가 전국 규모라 초보인 내가 살아남기엔 레벨이 한참 높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 도전했나

 

춘계 대회 이후 오른쪽 다리 십자인대 수술을 하게 되면서 1년 넘도록 재활하느라 한동안 운동 자체를 못했다. 입시 준비할 때 다쳤었는데 대회 이후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끊어졌다고 하더라. 

 

수술전까지 인대가 끊어진 상태로 계속 운동했던 건가. 통증이 상당했을 텐데

 

많이 아팠다. 그런데 참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던 것 같다. 나중에는 운동하면 ‘원래 통증이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수술 후엔 완치가 됐건가

 

완치가 되지 않는다. 허벅지 뒤쪽에 힘줄 하나를 뗀 상태라 늘 불안정하다. 비가 오면 다리가 쑤시기도 하고, 하체 운동할 때 애로사항이 많다. 실제로 하체를 보면 사이즈 차이가 눈으로도 확연히 보인다.

 


▲ 사이즈 차이가 확연한 고종우의 하체. 사진=고종우 제공

 

하체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일단 여러 하체 운동을 해봤을 때 통증이 너무 심한 건 하지 않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하체 운동 중에 스쿼트를 가장 좋아하는데 맨 마지막 순서로 한다. 먼저 하게 되면 통증이 심하게 올라오니깐.

 

스쿼트는 폼 롤러로 20~30분 간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레그 익스텐션과 컬 종류로 하체를 풀어준 후에 실시한다. 그리고 요즘처럼 추운 날엔 따뜻한 물로 마사지해주는 것도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재활 이후 다시 대회에 참가한 시기는

 

2015년 시흥 대회였다. 당시 뷰티바디랑 보디빌딩 종목에 참가했는데 뷰티바디는 5위, 보디빌딩은 예선 탈락했다(쓴웃음). 이후 참가하는 대회에서도 보디빌딩 종목은 계속해서 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뷰티바디에 나간 걸 보면 보디빌딩 뿐만 아니라 피트니스 종목에도 관심이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주변에서 보디빌딩으론 가망이 없다고 느꼈는지 피트니스쪽으로 나가보라는 권유가 많았다. 그래서 참가해본 건데 개인적으론 솔직히 애정이 많이 가진 않았다. 처음 시작한 게 보디빌딩이었고, 거기서 입상하는 게 당시 내 목표였다. 그리고 수술 후 1년 넘게 병원에서 거의 *폐인처럼 지내다가 웨이트를 다시 시작했을 때 나를 이끌어 준 분이 보디빌더였던 영향도 있다.


보디빌딩을 좋아해서 열심히 했지만 성적이 뒤따르지 않았다. 좌절감은 없었나

 

매번 예선 탈락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하지 말자. 어차피 안 될 텐데 대회 나가지 말자’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눈떠보면 어느새 무대에 올라가 있더라(웃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몸이 반응한 것 같다. 마치 ‘중독’된 것 같다랄까.

 

Way to go! 잘 했어!

 


▲ 지난 2016년 서울시협회장배에서 보디빌딩 종목 생애 첫 체급 우승을 달성한 고종우. 그동안 부모님 앞에서 예선 탈락한 모습만 보였던 고종우는 당당히 체급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고종우 제공

 

계속된 입상 실패. 그렇다면 ‘보디빌딩’ 종목으로 첫 입상한 대회는

 

입상한 건 2016년도 서울시협회장배 남자 일반부 25세 체급에서 1등했다.

 

(박수)

 

그때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너무 기뻐서. 드디어 ‘노력이 빛을 보는구나’ 싶었다. 그날따라 몸이 잘 나와서 좋은 성적이 나왔던 것 같다. 부모님이 응원 왔었는데 늘 예선 탈락하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1등한 걸 보여드려서 뿌듯했다.

 

가족들이 보디빌더의 길을 응원했었는지

 

사실 집에선 내가 보디빌딩 하는 걸 많이 반대했었다. 다리도 성치 않은데 대회 준비로 힘들어 하는 걸 아시니깐. 그런데 1등했을 때 가장 기뻐해주고 좋아했던 건 부모님이었다. 지금은 어머니가 내가 출근하기 전에 그램 수까지 신경써서 밥을 따로 준비해줄 정도로 응원해 주신다..

 

첫 입상을 1등으로 장식하고 난 후, 성적이 좋았겠다

 

속된 말로 ‘입이 터졌다’라고 하는데 8월 서울시협회장배 이후 갑자기 식욕이 폭발했다(웃음). 첫 1등 했을 때 체중이 72kg 정도였는데 10월 부천시장배 대회 참가할 땐 80kg 가까이 나갔다. 매스만 커지고 데피니션은 떨어져서 5위로 겨우 입상했다. 그때 이후로 쭉 하락세였다. 이듬해인 17년도 성적까지 처참했다. 정말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구나 싶었다.


지난해에도 계속 추락(?)했나

 

다행히 2018년 상반기부터 조금씩 성적이 좋아지더라(웃음). 4월에 평택에서 열렸던 제2회 한미 슈퍼스타 피트니스 클래식에서 -75kg 체급 정상을 밟았다. 이후 다른 대회에서도 연이어 상위권에 입상하면서 나름 안정권에 접어들게 됐다.

 


▲ 제3회 한미슈퍼스타 피트니스 클래식에서 피지크 종목 그랑프리를 거머쥔 고종우. 사진=김병정 기자

 

*2019년 고종우 대회 주요 성적

-3월 16일 피스대전(보디빌딩 +75kg 입상/클래식 -178cm 3위)

-3월 31일 피스수원(보디빌딩 -75kg 1위/클래식 -178cm 2위)

-4월 6일 김포시장배(보디빌딩 -80kg 3위/클래식 -178cm 3위)

-4월 7일 하남시협회장배(보디빌딩 -80kg 2위)

-4월 14일 부천시장배(보디빌딩 -75kg 1위)

-4월 27일 한미슈퍼스타(보디빌딩 -80kg 3위/클래식 +178cm 3위/피지크 +178cm 1위 및 그랑프리)

-4월 28일 인천남동구청장배(피지크 +178cm 1위)

-5월 4일 인천중구청장배(보디빌딩 -80kg 3위/피지크 +178cm 2위)

 

올해 어느 때보다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개인 커리어로는 가장 정점이 아닐까 싶은데


올 상반기 3개월 동안 10여개 대회에 참가했다. 거의 매주 무대에 올랐고, 성적도 괜찮게 나왔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대회장 문을 두드렸던 게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 물론 정상급 선수들이 보면 대단한 성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겐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생애 첫 그랑프리도 해보고.

 

(박수) 어떤 대회였나

 

올해 평택에서 열린 제3회 한미슈퍼스타 피트니스 클래식에서 피지크로 그랑프리를 했다. 피지크는 주변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한번씩 도전해왔다. 사실 제2회 한미슈퍼스타에서도 체급 2위를 한 바 있다. 작년 부활의 날개 짓을 했던 게 평택인데, 첫 그랑프리도 평택에서 하게 되니 ‘여기에 뭔가 기운이 있나’란 생각도 들더라(웃음).

 

잘하고 싶고, 욕심이 나는 건 보디빌딩인데 피지크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금도 더 잘해서 그랑프리 해보고 싶은 건 보디빌딩이다. 다만 이제는 너무 하나만 고집하진 않으려고 한다. (보디빌딩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피지크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고질적인 하체 부상으로 보디빌딩은 한계를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두드려볼 것이다. 그 벽이 깨질 때까지. 보디빌딩이 너무 좋으니까.

 

올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 기존과 다르게 운동했다던가
 

운동 시간을 기존보다 짧게 가져갔다. 이틀 안에 전신 운동이 다 되게 사이클을 돌렸다. 예를 들어 오전에 가슴이랑 어깨측면, 삼두근을 하면 오후엔 등, 어깨후면, 상완이두근 운동을 했다. 다음날 오전에 하체, 오후엔 다시 가슴, 어깨측면, 삼두근 이런 식으로 해서 하루 반나절 동안 전신운동을 끝냈다.

 

식단의 변화는
 

딱히 큰 변화는 없었다. 보통 하루 4~5끼를 먹는데 닭가슴살(150g), 밥(200~300g), 김치로 해결한다. 그 외 뭔가를 먹어야 할 땐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 위주로 챙겨먹었다.

 

go somebody’s way ~와 같은 방향으로 가다

 


▲ 하남시 초대 그랑프리 이민재 선수와 고종우의 투샷. 사진=고종우 제공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길잡이가 된 이가 있을까

 

이민재 선수. 스무살 때 트레이너 아르바이트했던 짐의 매니저였는데 날 좋게 봐주셔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민재 선수에게 운동 노하우나 스킬, 멘탈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다. 재활할 때도 큰 힘이 됐고, 가끔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이 크게 와 닿더라.

 

예를 들면?

 

한번은 내가 죽기 살기로 덤벨을 들고 있는데 그런 날 보더니 ‘너의 본 운동은 누군가에겐 워밍업일 수 있다’라고. 우스갯소리로 던진 건데 곱씹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전국체전에 나가는 선수가 날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고, 더 노력해서 발전해야 한다.

 

이민재 선수가 롤모델이겠다

 

롤모델이다. 곁에서 이민재 선수가 대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독하다. 그런 부분들이 존경스럽고 멋있다. 체전 나가는 선수들 대부분이 거의 1년 동안 혹독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한다. 정말 웬만한 멘탈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민재 선수보다 더 독한 선수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8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 시대회 2등했던 선수가 지금은 체전을 뛸 만큼 발전하는 걸 직접 목격했으니, 더 애정이 가고 본받고 싶다.  


올해 생애 첫 그랑프리도 했고, 개인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내년 목표는 뭘까

 

당연히 그랑프리다. 보디빌딩으로. 시대회 그랑프리 후엔 언젠가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도 꼭 한 번 참가해보고 싶다. 올해의 성적은 다 묻고 더블로 갈 생각이다(웃음).

 

곽철용 명대사 하신 건가(폭소). 마포대교 안 무너졌으니 쭉쭉 달려나가길 기원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아직 보디빌더란 말을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앞으로도 더 노력하고 많이 배워서 좋은 선수로 거듭나겠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길 바란다.

 


▲ 사진=스튜디오U

 

권성운 (kwon.sw@foodnamoo.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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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9-12-04 16: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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