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시합장에 도착해 선수등록을 마치고 번호표를 받았다. 정말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무대가 눈에 들어온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캄캄해져 버리고 말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무대뿐만 아니라 경기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기 또한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 난 동네 축구를 생각하고 왔는데, 이곳은 월드컵 경기장 같았다. 사진 제공 = 김성태 선수
“이런 곳에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갑자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선수대기실에서 시합을 준비하는 다른 선수들의 몸을 보니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것만 같았다. 도저히 옷을 벗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번 느끼는 거지만 왜 시합장에만 가면 나보다 몸 좋은 선수들만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선수 개인의 마인드 컨트롤과 자기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운동이 주는 깨달음보다 무대나 성적이 주는 쾌락에 훈련 과정들이 희생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내 순서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무대 뒤에서 마지막 펌핑이 시작됐다. 나는 보디빌딩 무대에 오른 선수보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선수들의 모습을 꼭 한 번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선수의 열정은 지금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강렬함이 묻어 있다고 확신한다. 다들 극도의 수분 조절로 지쳐있을 만도 한데, 아주 작은 공간만 있으면 쉴 새 없이 푸쉬업을 반복한다. 서포터들의 도움을 받아 몸속에 숨어있는 작은 혈관들까지도 자극하기 위해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일그러지는 그들의 표정에서 얼마나 고통을 참고 있는지가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그 속에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선수 입장!
‘방금 전까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던 그 사람들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선수들은 본인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최대한 편안한 표정과 당당한 모습으로 입장한다. 그 모습 속에 보디빌딩의 숨겨진 매력을 찾은 것만 같았다. 무대 위에서 미소 그리고 미소 뒤에 숨겨진 고통. 그 둘의 온전한 의미를 선수가 되어보니 조금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최대한 고통을 숨긴 채 미소 지으려 노력했다. 어쩜 노력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그 순간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정을 쏟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뜨거운 무대 조명 아래 입속이 말라 타들어 가는 고통이 있었지만,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 행복이 공존했다.
비록 순위 경쟁은 탈락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게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무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래서인지 무대를 내려오는 나의 몸과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고,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 한 번의 미소를 위해 지난 시간 동안 수만 번의 고통을 참아냈구나.’
▲ 보디빌더가 된 순간 나는 웃고 있었다. 사진 제공 = 김성태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