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9회 전국체전 고등부 경기에 출전한 학생 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다. 한국 보디빌딩의 미래인 이들은 정말 햇볕 한 점 가려지지 않는 길바닥에서 경기 직전까지 준비를 했다. 일반부 성인 선수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천막이 마련 돼 있었지만 모든 선수들과 그 가족, 서포터들이 사용하기엔 부족했다. 게다가 태양 위치가 바뀌면 선수들은 직사광선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사진=박준혁 PD
[개근질닷컴]
“전국체전에 나온 세계챔피언이 길에서 노숙하고 있어요. 직사광선에 현기증 나서 몸도 못 가누는데, 이때 대한보디빌딩협회는 도대체 뭘 하고 있습니까?”
본 기자는 8년 동안 스포츠 전문기자로 올림픽, 동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전국체전, 장애인전국체전, 세계선수권대회, WBC, 주요 프로 스포츠 리그 등 각종 대회 50여 개 종목 2,000경기 이상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하지만 국내·외 어떤 스포츠 종목 경기나 대회에서도 선수들을 야외, 그것도 길바닥에서 장기간 대기시키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보디빌딩인의 축제이자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전국체전 보디빌딩 경기 현장에선 눈을 의심케 하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세계 챔피언이 노숙을 하고, 전년도 금메달리스트가 직사광선을 피해 상반신만 가린 채 힘겹게 닭가슴살 몇 조각을 삼키고 있었다. 야외에 그대로 노출 돼서도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진땀을 쏟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형언하기 힘든 감동과 안타까움이 함께 밀려왔다.
▲ 2018 제99회 전국체전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 보디빌딩 간판 선수인 최대봉도 대회 직전까지 야외에서 힘들게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보디빌딩계의 현주소다. 정작 그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관리단체 상태의 대한보디빌딩협회 직원들은 실내 경기장에서 주로 머물렀다. 사진=박준혁 PD
적어도 그곳엔 선수나 가족, 그리고 팬을 위한 그 어떤 배려나 최소한의 존중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선수는 “보디빌딩인으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참혹한 기분까지 든다. 한국 보디빌딩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전국체전마저 이런 데 다른 대회는 어떻겠나”라며 “협회로부터 최소한의 배려나 존중도 받지 못 한다는 생각에 선수로서 회의감도 느껴진다”며 울분을 토했다.
다른 선수도 “요즘엔 사설대회나 각종 피트니스 대회가 훨씬 더 선수들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전혀 없다. 대한체육회가 대보협을 관리단체로 지정한 이유를 높으신 분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변덕이 심한 날씨도 선수들을 힘들게 했다. 계체가 이뤄진 13일 오전엔 영상 6~7도까지 떨어진 쌀쌀한 날씨가 선수들을 괴롭혔다. 그러더니 14일 오후엔 오히려 기온이 영상 20도 가까이 치솟아 현기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 5일째 수분을 섭취하지 않아 쓰러질 것 같다. 그런데 보통 선수들은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1년간 전국체전을 준비한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햇볕이 뜨거워 현기증이 나지만 최고의 경기를 위해 끝까지 쓰러지지 않겠다.”
이 선수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끝내 출전 의지를 보였고, 실제 무대에서도 좋은 경기를 펼쳤다.
▲ 선수들은 야외 기후환경에 그대로 노출 돼 경기 전 컨디셔닝을 했다. 사진=박준혁 PD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선수 가족들과 서포터도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곳곳에 돗자리를 펼쳤지만, 공간이 부족하고 협소해 드물게 있는 공터나 그늘로 자리를 피했다. 위험한 차도나 주차장에서 자리 잡은 이들도 많았다.
순수하게 선수들을 응원하고 최고의 무대를 함께 하기 위해 온 많은 팬들이 불편함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실내경기야 당연하고, 야외에서 열리는 경기조차 선수들을 위한 최소한의 휴식 공간은 충분히 준비되기 마련이다.
스포츠는 ‘몸’을 바탕으로 하는 종목이기에 컨디션 관리는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관리는 대회 주최 측, 특히 해당 종목 스포츠 협회의 기본적인 업무이자 의무다.
협회가 이를 충분하게 제대로 관리하기는 커녕 오히려 저해하는 행정을 펼친다면, 실질적인 경기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최소한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행위다.
▲ 2018 제99회 전국체전 보디빌딩 경기장엔 1,2일차 경기 내내 오전부터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특히 일반부 경기가 진행된 오후부터는 통로까지 자리가 가득 찼다. 하지만 대보협은 이들 팬들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안내나 배려도 하지 않았다. 사진=박준혁 PD
무엇보다 이것은 ‘관리단체인 대보협이 보디빌딩이란 스포츠의 경기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매우 중대한 실책을 하고 있다’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심지어 금메달을 딴 선수는 ‘위대한 승자’의 당연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10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간 펼쳐진 보디빌딩 경기는 국내 미디어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무려 5명의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보디빌딩&피트니스 전문미디어 개근질닷컴을 제외하면 지역 방송국이나 신문들이 잠깐 대회장을 찾았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매우 제한적인 취재만 이뤄졌다.
▲ '작은 거인' 남경윤은 10월 15일 정부로부터 보디빌딩을 통해 체육계에 기여한 공로로 맹호장 훈장을 받았다. 보디빌딩인 가운데선 최초다. 이처럼 보디빌딩계의 영예를 드높인 남경윤은 불과 하루전인 14일 2018 제99회 전국체전 웰터급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인터뷰룸은 커녕, 포토존도 없는 야외에서 개근질닷컴과 인터뷰를 해야 했다.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어야 할 이들이 말이다. 사진=박준혁 PD
이틀간 보디빌딩 전 경기를 모두 취재하고, 대부분의 금메달리스트와 많은 선수를 인터뷰하고, 전 종목 전 선수의 사진과 영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한 개근질닷컴을 제외하면 어떤 매체도 보디빌딩에 관심 갖지 않았다.
실제 각종 주요 포털을 통해 검색해봐도 개근질닷컴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기사 한 줄조차 나오지 않는다. 경기 결과, 사진, 영상이 올라온 곳도 개근질닷컴이 유일하다.
미디어와 뉴스가 없는 스포츠는 없다. 그런 스포츠는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동시에 그 스포츠의 성장은 절대 불가능하다. 외려 요즘 시대엔 더 빠른 속도로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지금 보디빌딩이 그렇다.
이런 무관심은 미디어 뿐만이 아니다.
전국체전엔 보통 대한체육회 임원, 시도지부 체육회 임원, 정치인, 각종 단체장 등 VIP석을 빽빽하게 채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솜리문화체육회관엔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이 장면이 현재 대한보디빌딩협회 행정력 실체이고,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보디빌딩이 처해 있는 현주소다.
물론 의식 있는 보디빌딩인과 팬을 만나며 가슴이 뜨거워진 순간도 많았다.
휴일을 반납하고 전국에서 몇 시간 동안 차를 몰고 대회장에 온 각종 시도지부 임원, 체육회 관계자들. 그들은 선수들을 제 자식이나 동생처럼 살뜰하게 챙겼다.
또 관중석을 빼곡하게 메운 팬들은 목이 터져나갈 정도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들이 바로 보디빌딩계의 가장 큰 자산이고 보물이다.
▲ 심판위원들은 대회 이틀간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 철저한 관리로 클린한 대회에 기여했다. 이들이 한국보디빌딩계의 숨은 공로자들이다. 사진=박준혁 PD
심판위원들도 실질 경비 지원을 감안해도, 사실상 자비를 들여 봉사하는 이들이다. 이 심판위원들은 이틀간 공정하고 투명한 판정을 위해 선수들은 물론, 각종 임원들과의 접촉도 철저히 피했다. 이번 대회가 판정 시비 없이 투명하게 운영된 이유다.
한 심판위원은 “보디빌딩계가 최근 수년간 약물 문제와 판정 시비로 홍역을 앓았다. 그때문에 올해는 공정성을 위해서 몸가짐도 최대한 조심했다”며 이틀간 대회에 임한 심판위원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 큰 키의 한 인천광역시보디빌딩협회 임원은 비교심사에서 탈락한 선수의 땀을 닦아주고 위로하는 모습으로 많은 선수들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았다.
중앙경기위원인 인천광역시보디빌딩협회 한 이사는 비교심사에 오르지 못한 무대 위 선수들의 땀을 일일이 닦아 주고 위로해, 선수들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았다. 이 장면이 찍힌 게시물은 SNS를 통해 보디빌딩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이 게시물에 나오는 내용처럼 경기 첫날, 근육 경련으로 쓰러진 한 선수가 나왔다. 그 선수가 회복될 때까지 한참이나 경기가 지연됐지만, 그 시간만큼 더 힘들었을 선수들은 그 어떤 이도 불평 하나 없이 무대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 제99회 전국체전 보디빌딩 경기 이틀 간 경기서 몇 차례 근육경련을 호소하며 쓰러진 선수들이 나왔다. 그때 놀랍게도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들었을 선수들이 쓰러진 선수를 먼저 배려했다. 진행을 맡은 협회 임원들도 선수가 회복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고 선수들의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사진=이일영 PD
모든 보디빌딩 선수들의 마음도 이와 같다.
이번 대회 다수의 챔피언들은 개근질닷컴과 인터뷰서 “어려움에 빠진 보디빌딩을 위해 내 작은 힘이나마 이 보디빌딩계에 봉사하고 기여하고 싶다”며 책임감을 내비쳤다. 진한 애정과 자긍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보디빌딩은 여전히 뜨겁게 생동하고 있다. 수많은 구성원은 여전히 정직한 땀을 흘리고 있는데, 다만 이들의 심장이 돼야 할 협회가 죽어 있을 뿐이다.
선수를 위하지 않는, 팬들을 배려하지 않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스포츠는 자멸한다.
유구한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고, 주체적인 협회로서의 기본 자격을 잃고 ‘관리단체’가 된 대한보디빌딩협회가 이를 방증한다.
그 엄중한 경고를 끝내 깨닫지 못하는 스포츠협회, 그 구성원은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
썩은 것이 모두 곪아 터지고 나면 새 살이 돋는다. 이젠 의식 있는 보디빌딩인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개근질닷컴 김원익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