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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 인 더 올림피아9] ‘만년 2인자’ 제이 커틀러 “콜먼 좀 이겨보자!”

등록일 2019.12.13 09:36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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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유튜브 캡쳐

 

[개근질닷컴] 어떤 곳에 가든 경쟁은 존재한다. 경쟁이 있는 곳엔 1등과 최하위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엔 2위도 존재한다.

 

경쟁이 있는 곳에서 2등을 ‘못 했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그 경쟁이 세계무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세상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 ‘단 한 계단’을 넘지 못하고 평생 2인자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세계무대에서 챔피언들은 그 한 끗 차이, 그러나 누군가에겐 벽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자가 부동의 1위, 챔피언을 넘어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상 보디빌더들의 무대 ‘Mr. Olympia’엔 유명한 ‘만년 2인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제이 커틀러(Jay Cutler).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당시 챔피언 로니 콜먼(Ronnie Coleman)을 넘지 못한 ‘2등의 사나이’로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2006 Mr. Olympia’에서 로니 콜먼을 꺾고 그 오명을 말끔히 씻어낸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도전자이자 챔피언으로 여전히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로니 콜먼은 꺾자, 사람들은 ‘만년 2인자’가 아닌 ‘콜먼을 넘은 보디빌더 커틀러’라고 기억하기 시작했다”

 


▲ 사진=제이 커틀러 인스타그램

 

제이 커틀러의 어린 시절

 

제이 커틀러는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1973년에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건설 사업을 했다. 그때문에 커틀러는 11살 때 형들을 따라 공사장에서 일을 도왔다. 놀랍게도 이 11살 꼬마는 벽돌을 나르고 다녔고, 자연스레 근육이 형성됐다.

 

공사장 일은 ‘커틀러라는 씨앗’에 ‘물과 거름’이 되었다. 같은 나이 친구들과는 다른 피지컬과 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일의 순서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 중요한 순간이었다. 

 

“7명의 형제가 있었고 그중 막내였다. 형들을 따라 11살 때부터 공사장에서 집안일을 도왔다. 그때 나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할 때 단계적인 순서’와 ‘윤리’를 배웠다”

 


▲ 타고난 근육 매스를 보여주는 18살 제이 커틀러. 사진=유튜브 캡쳐

 

체육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커틀러는 18살 생일을 맞아 헬스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이 소년은 ‘보디빌딩 세계’에 그의 발자취를 남길지 몰랐다.

 

그는 대학교 입학 후 교도관이 되기 위해 범죄심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보다 체육관에서 한 운동에 더 흥미가 있었다. 그 결과 그의 피지컬은 어느덧 그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커졌다.

 

보디빌딩 도전기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커틀러는 트레이너 마르코스 로드리게즈(Marcos Rodriguez)를 만난다. 커틀러는 곧바로 로드리게즈의 보디빌딩 지식에 매료됐고, 그처럼 보디빌딩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1993년 커틀러가 갓 스무살이 된 해 ‘NPC Iron Bodies Invitational show’에 참가 신청서를 넣었다. 그런데 커틀러는 경험 삼아 나갔던 첫 대회에서 10대 체급과 남자 일반부 체급 1위를 석권해버린다. 이때 교도관의 꿈을 관두고, 본인의 잠재력을 키우기로 결심한다. 교도관들에겐 안타까운, 범죄자들에겐 참으로 다행인 결정이었다.

 


▲ 1993년 NPC 대회 무대에 오른 제이 커틀러(왼쪽). 사진=유튜브 캡쳐

 

커틀러는 첫 대회 이후 단 하루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 노력의 결과는 ‘1993 NPC Teen Nationlas’에서 체급 1위, 2년 뒤 열린 ‘1995 NPC U.S. Tournament of Champions’ 오버롤을 거머쥐었다. 미국 전역에 커틀러의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체육관에서 훈련은 항상 즐겁다.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선 ‘다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체육관을 나갔을 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운동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프로 카드 획득

 

1995 NPC U.S. Tournament of Champions 오버롤이 된 제이 커틀러에게 ‘세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이듬해 한 단계 더 큰 대회인 ‘NPC Nationals’에서 더 좋아진 기량으로 1위와 그토록 원하던 프로 카드를 얻게 된다.

 

프로카드는 어지간한 보디빌더들이 10년을 운동 해도 획득하지 못한다. 최정상급 보디빌더를 제외한 이들이 대부분 20대 후반에 프로 카드를 얻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제이 커틀러는 23살이란 어린 나이에 미스터 올림피아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커틀러가 은퇴한 후 미국 한 매체는 그에게 당시의 기분을 물었다.

 

“프로카드를 획득하자마자 미스터 올림피아가 될 것으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성공하기 위한 지름길은 없다. 그 누구도 산 정상에 바로 오를 수 없다. 한 발자국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어떤 한 희생도 없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커틀러가 답했다. 기자는 이어 인터뷰 당시 46세의 커틀러가 23세의 커틀러를 만난다면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 질문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진 않다. 은퇴하고 6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23살 당시와 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니까 굳이 과거의 나를 만나야 하겠나?”

 

‘만년 2인자’ 제이 커틀러, ‘넘어야하는 벽’ 로니 콜먼

 


▲ 라이벌이자 친구인 제이 커틀러와 로니 콜먼. 사진=유튜브 캡쳐

 

제이 커틀러가 보디빌딩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로니 콜먼이란 ‘큰 산’을 넘어야 했다. 커틀러가 올림피아 무대를 도전한 2000년도는 로니 콜먼의 최전성기였다. 커틀러는 ‘로니 콜먼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2000년 첫 도전을 했지만 그의 순위는 고작 8위. 결코 ‘쉽지 않은 신계의 전쟁’이었다.

 

이듬해 2001년, 지난 10년간 비교도 안 되는 완벽한 기량으로 올림피아 무대에 출전한다.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 로니 콜먼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2001년은 로니 콜먼이 보디빌딩 최초 아놀드 클래식과 올림피아 토로피를 동시에 든 ‘역대급 기량’의 시즌이었다. 커틀러는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2년 커틀러는 콜먼이 없는 아놀드 클래식에서 1위를 차지하지만, 올림피아에선 또 다시 2위에 머물렀다. 이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전성기 기량의 콜먼을 넘지 못하고 ‘만년 2인자’로 대중에게 기억된다.

 

“2위는 최고가 아닌 그냥 2위일 뿐이다. 정말 로니 콜먼을 이기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올림피아가 되고 싶은 것인가, 로니 콜먼을 넘고 싶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로니 콜먼을 넘어야만 내 커리어가 시작된다’였다. 단 한 명, 콜먼을 넘는 것에 내 모든 경력을 걸어야만 했다”

 

4번의 정상

 


▲ 결국 차지한 올림피아 메달. 사진=제이 커틀러 인스타그램

 

‘2006 Mr. Olmypia’는 제이 커틀러 커리어의 시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의미 있는 해였다. 그토록 넘고 싶었던 로니 콜먼이란 벽을 넘고 트로피를 들어올린 시즌이었다. 이 시즌을 시작으로 그는 2010년까지 총 4번(2006, 2007, 2009, 2010)의 올림피아 주인공이 된다.

 

커틀러의 전성기는 앞선 챔피언들(*리 헤이니·8연속, 도리안 예이츠·6연속, 로니 콜먼·8연속)만큼 길지 않았다. 2008년엔 항상 자신의 순위보다 뒤에 있던 *덱스터 잭슨(Dexter Jackson)에게 1위 타이틀을 내준 적도 있다.

 

*챔피언들의 이름을 클릭하면 그들의 올림피아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해 덱스터 잭슨(은 복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완벽한 기량으로 아놀드 클래식과 올림피아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 올린다. 이후 다시 정상에 서지 못한다. 하지만 2019 올림피아까지 한 해도 빠지 않고 출전했고 올해 4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1969년생 보디빌더로 롱런하고 있는 선수다.

 

커트러의 챔피언 타이틀 유지를 방해한 건 덱스터 잭슨만이 아니었다. 2011년 커틀러를 제치고 올림피아의 주인공이 된 사람은 다름아닌 21세기 가장 완벽한 보디빌더 *필 히스(Phil Heath)였다.

 

*필 히스- 다음 ‘룩인더올림피아’ 시리즈 주인공. 2011년부터 17년까지 올림피아 정상을 지켰다.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21세기 가장 뛰어난 보디빌더.  

 


▲ 덱스터 잭슨(왼쪽), 필 히스(오른쪽). 사진=유튜브 캡쳐

 

2011년 히스에게 타이틀을 뺏긴 커틀러는 이듬해 다시 한번 왕좌를 노크했지만 이두근 부상으로 올림피아에 출전하지 못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다음해인 2013 올림피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예전의 기량을 찾지 못하고 6위에 그쳤다. 전성기 시절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던 위치. 커틀러는 그 경기 이후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하고 나서 보니까 내가 겪어온 경쟁들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 이 경쟁은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은퇴 이후

 

다행히 제이 커틀러는 로니 콜먼처럼 부상과 약물탓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역 시절만큼 건강하다. 2019년 현재 예전과 같은 프레임은 아니지만 출중한 컨디션의 근육을 유지하고 있다.

 


▲ 은퇴 이후 계속해서 친구로 지내고 있는 두 전설. 사진=제이 커틀러 인스타그램

 

현재 커틀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00만 명으로 미국에서 인기는 여전하다. 보디빌딩 제품 사업가, 운동 인플루언서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또 그는 자신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로니 콜먼과 친하게 지내며 종종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제이 커틀러와 로니 콜먼. 이 둘의 세기의 대결은 언제나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커틀러가 로니 콜먼을 넘을 수 있었던 이유도, 콜먼이 챔피언으로 장기집권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서로가 각자의 빛이 됐기 때문은 아닐까?

 

로니 콜먼의 인생이 궁금하다면? 

 

휠체어 탄 로니 콜먼 "후회 따윈 없다" [룩 인 더 올림피아8]   

 

허준호 (hur.jh@foodnamoo.com) 기자 
<저작권자(c) 개근질닷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등록 2019-12-13 09: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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