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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디빌딩은 죽었다.

등록일 2020.02.13 17:26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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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병정 기자

 

[개근질닷컴] “…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처음으로 ‘비(非)영어 영화’인 기생충으로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이 초대형 사건은 해외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같이 조명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이 영화에 투자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전, 봉준호 감독의 ‘마더’의 개봉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사람의 첫 작품 ‘마더’는 예술성 만큼은 호평 받았지만 흥행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경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을 믿고 그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까지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 ‘뚝심 있는 투자’를 진행했다. 그 인연은 영화 기생충까지 이어졌고, 결국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시상식에 같이 오른다.  

 

영화의 투자는 ‘수익’이란 가시적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예술이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 투자자를 ‘예술 활동을 순수하게 지원하는 사람’, 즉 스폰서로 봐도 무방하다.

 

예술을 경이로운 경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선 자본의 효율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16세기 메디치 家’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한 후원이 르네상스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이자, 계기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 후원은 예술의 범위를 넘어 스포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다. 대기업 삼성은 어린 나이에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던 박세리를 후원해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에 보답하듯 박세리는 미국 활동 첫 해 LPGA에서 4승을 거둔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선 천문학적인 가치로 뛰었단 점이다.

 

영화계에 아카데미가, 골프에 LPGA가 있다면 보디빌딩엔 ‘Mr. Olympia’가 있다. 세계 각국 ‘프로쇼’에 참가한 정상 선수들을 넘어야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그 ‘정상을 넘은 정상’끼리 대결하는 그야말로 보디빌딩 최고 권위의 무대다.

 


▲ 김성환, 안다정. 사진=김성환 인스타그램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김성환, 안다정’ 단 두 명의 선수가 미스터 올림피아 무대에 올랐다. 특히 안다정은 ‘한국인 최초의 올림피아 프로 피규어 본선 무대’였다.  

 

안다정은 경기를 마치고 자부심을 안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것 같지만 인터뷰에선 의외의 말을 꺼냈다.

 

“경기가 끝나고 힘들었다. 심신이 지쳤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2년간 시간을 투자하면서 무언가 영리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겠단 목적 하나 없이 오직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올림피아란 대회에 달랑 우리 둘만 남은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이란 못난 생각이 들었다”

 

보디빌딩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비인기 종목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디빌딩 업계 최고 대회의 본선 진출이란 업적을 조명하는 언론사는 없었다. 이 정도는 이미 보디빌딩을 하는 당사자들과 보디빌딩 취재 기자로선 이미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상 여자선수가 아무 스폰없이 사비를 들여 경기를 마쳤단 사실은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일류 선수가 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의 투자’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을 뒷받침해줄 ‘자본’은 적어도, 피트니스 관련 사업으로 돈을 번 기업이라면 후원해 줄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우린, 여기서 ‘왜 야구 유니폼이 잘 팔릴까?’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스포츠의 정상 선수들은 대중의 구매욕을 끌어 올린다. ‘축구화는 왜 잘 팔릴까?’. 그 축구화를 신으면 어쩐지 나도 메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 사진=김병정 기자

 

피트니스 기업은 이런 가치를 무시하고 선수를 이용한 단기적인 마케팅에만 목을 맨다. 보디빌딩 발전을 위한 순수한 후원은 없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 당연히 순수한 후원을 찾기 힘들다. 다만, 보디빌딩의 발전 없이 피트니스 사업의 발전을 바라는 생각 또한 어리석다.

 

안다정의 코치 허재우는 앞으로 계속 도전하기 위해선 “비즈니스 모델이나 지원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지금의 목표다. 그래야 우리가 계속 올림피아란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게 현실이다. 비즈니스 모델이나 지원 구조를 선수가 직접 찾아야 하는 유일무이한 스포츠. 이것이 대한민국 보디빌딩이다. 대한민국의 보디빌딩은 죽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 스포츠에선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봉준호는 나오지 않는다.

허준호 (hkh2982@jr.naver.com) 기자 
<저작권자(c) 개근질닷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등록 2020-02-13 17: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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