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에즈 운하 마비. 사진=트위터 캡처
[개근질닷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가로막혀 사흘째 마비 상태인 가운데 국제 해상 물류에 비상이 걸렸다.
25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과 해운업계에 따르면 ‘에버 기븐’(Ever Given)이라는 이름의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이 지난 24일 오전 수에즈 운하 북쪽에 멈춰서면서 100척이 넘는 선박 운항이 차질을 빚고 있다.
에버 기븐은 일본 이마바리조선소가 건조한 2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일본 쇼에이 기센이 소유주지만 대만 해운업체 에버그린이 장기용선하고 있어 소속 선사는 에버그린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박은 뱃머리 부분이 한쪽 제방에 박히면서 선미 부분도 반대쪽 제방에 걸쳐진 형태로 운하를 가로막고 있다.
에버그린은 선박이 멈춰 선 이유와 관련해 “갑자기 불어온 강한 바람 때문에 선체가 항로를 이탈하면서 바닥과 충돌해 좌초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현재 선박 복구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수에즈 운하 재개에는 수일이 걸릴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016년에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수에즈 운하에서 벌어져 이틀간 통항이 중단됐다. 당시 사고 선박은 에버기븐호의 절반 크기였다.
수에즈 운하에서는 2004년, 2016년, 2017년에도 선박 사고로 통항이 일시로 차질을 빚은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사고 선박이 초대형이었던 적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통항 재개에 수주일이 걸릴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된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란지스 라자는 “이런 사고는 전대미문이다”라며 “선박 정체가 며칠 또는 몇 주간 계속될 수 있고 국제 시장의 일정도 차례로 영향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수에즈 운하는 국제 해상 물류의 핵심 통로로, 지난해 기준 약 1만9천척, 하루 평균 51척 이 운하를 통과,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담당했다. 이 운하가 막히면 상품뿐 아니라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운송도 차질을 빚게 된다.
통항이 사흘째 접어들면서 운하 양쪽에 정체된 선박이 185척에 달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선박 회사들은 통항이 빠르게 재개된다고 해도 수일간 사고의 여파가 계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그렇지 않아도 빡빡한 국제 공급망이 위협받을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자동차와 컴퓨터 제조사에 대한 반도체 공급이 이번 수에즈 운하 마비로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기치 않은 사고에 선박의 금전적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류 저널 로이드의 베이루트 지사장 자밀 사예그는 “수에즈 운하에서 항행이 지연되면 선주는 하루에 약 6만달러(약 7천만원), 즉 한시간에 3천∼4천 달러(약 3천400∼4천500만원)의 손해를 본다”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에버기븐호를 예인하는 작업이 더 길어지면 컨테이너를 내려 중량을 가볍게 해야 해서 수주가 소요될 수 있다”라며 “물류 회사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를 선택해야 할지를 놓고 어려운 계산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선박 전문가들은 좁은 수로를 지날 때 큰 배일수록 강풍에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수로를 지날 때 선미가 제방 쪽으로 쏠리는 ‘안벽 효과’(bank effect) 때문에 에버기븐호가 똑바로 가지 않고 가로로 기울었다는 설명도 나온다.
국제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지난 10년간 컨테이너선의 크기는 배로 커졌다. 이번처럼 운항 중단 사고가 났을 때 다른 배로 이동시키기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