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WNC
[개근질닷컴] 실패를 거듭해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섬을 뜻하는 사자성어, 칠전팔기(七顚八起).
신준희는 지난 6월 27일 서울시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2021 WNC 시그니처’ 내추럴 대회에서 생애 첫 오버롤을 들어올렸다.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약 20회가 넘는 대회 출전과 총 7번의 오버롤전 끝에 거둔 인생 최고의 성과였다.
본업으로 현재 교단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신준희의 하드코어(?)한 취미 생활과 감동의 오버롤 순간을 되돌아본다.
“오버롤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 사진=신준희 제공
간단한 자기소개
학교에선 교사로, 무대 위에선 보디빌더로 활동 중인 ‘교사빌더’ 신준희(32)라고 한다.
총 7번의 오버롤전을 치른 끝에 생애 첫 보디빌딩 종목정상을 밟았다. 감회가 남다르겠다
보디빌딩을 하면서 최대 목표가 오버롤을 한 번이라도 차지하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웃음)
오버롤을 차지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준다면
내추럴 대회에 3년 정도 참가하다 보니 자주 나오는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날 따라 평소 몸 좋기로 소문난 내추럴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면서 ‘열심히 해서 (영스터 숏)체급 1등이라도 해야지’라고만 생각했다. 감히 오버롤전은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체급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 상태였다.
경기 종료 후 시상식에서 한 명씩 선수들이 호명되는 가운데 WNC 피지크 프로이자, WNBF 보디빌딩 프로인 훈일이 형과 단 둘만 남아 1등 호명을 기다렸다. 긴장된 순간, 체급 1위로 내 이름이 불렸을 때 정말 기뻤고, 그제서야 ‘오버롤전을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 보디빌딩 오버롤전에서 혈투를 벌인 신준희(왼쪽)와 김훈일. 사진=신준희 제공
사실 평소에는 체급 1위를 하게 되면 그 자체로 너무 좋아서 오버롤전을 특별히 집중해서 준비하지 않았다. 늘 마음 속으로 ‘아직 나는 오버롤을 품을 만한 그릇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날 따라 강자들이 즐비했던 체급전에서 살아남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뭔가에 홀린 듯 미친듯이 오버롤전을 준비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날의 집중력과 그 동안의 노력이 최고의 성과로 돌아온 셈이다.
오버롤로 호명된 직후의 감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 내가 오버롤이구나’ 하고, 웃으면서 상도 받고 사진도 잘 찍고 내려왔다. 헌데 백스테이지로 내려온 순간 그동안 참가했던 대회들이 머릿속을 스치더라. 마치 주마등처럼. 그렇게 잠시 트로피를 내려놓고 감정을 추슬렀다.
너무 좋아하니깐 일을 병행하면서도 힘들게 해왔던 모든 순간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 성취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들 만큼 대단했다.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다”
▲ 사진=신준희 제공
본업이 교사라고 했다. 가르치는 과목은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4년째 재직 중이다.
원래 꿈이 교사였나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일단은 체대에 진학했는데 졸업 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진 않았다. 크게 나처럼 교직으로 가거나, 트레이너 분야로 빠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사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해서 기업쪽 취업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개인 성향과는 맞지 않을 것 같아서 교직 이수를 택하게 됐고,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지금의 체육교사가 됐다.
웨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는
스물 세 살 때 십자인대가 끊어진 적이 있다. 연골을 포함해 오른쪽 무릎을 크게다쳤는데 수술 후 근육이 다 빠져버리더라. 눈에 띌 만큼 차이가 나는 다리를 보고 있자니 서둘러 재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간 후 운동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이 시기 레그 익스텐션 같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왼쪽 다리와 밸런스를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이 때 운동을 통해 몸의 극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단 걸 몸소 깨닫게 됐다. 그래서 하체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을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고, 본격적으로 웨이트를 시작했다.
웨이트로 매일 몸을 단련하고, 대회에도 자주 출전하는 지금의 삶은 오히려 트레이너란 직업이 더 어울려 보인다. 그럼에도 교사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앞서 진로를 고민할 당시, 장차 미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개인적으로는 더 가치있는 삶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물론 운동을 사랑하고, 현재 최대 관심사가 보디빌딩이긴 하다. 다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영향을 주는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다.
▲ 선생님을 응원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준 사랑스러운 제자들. 사진=신준희 제공
반 학생들이 선생님이 몸짱인 걸 알고 있나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다.(웃음)
학생들이 대회장에 응원 온 적 있는지
2018년인가 19년에 나바코리아에 참가했을 때 중학생 담임이던 시절, 제자 3명이 대회장에 온 적 있다. 고양시에서 대중교통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대회장까지 찾아와 응원해줬는데 큰 힘이 됐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 스포츠모델 종목으로 입문한 신준희. 사진=신준희 제공
생애 첫 대회가 2017년 나바코리아에서 스포츠모델로 입문했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보디빌딩으로 주종목을 변경했던데
스포츠모델은 컨디셔닝, 신체 밸런스 등도 중요하지만 선수가 가진 매력과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한 종목이다. 나 같은 경우 리듬감도 없고, 매력을 발산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 그 시절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항상 힘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걸 느꼈다. 뭔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고, 후회가 많이 됐다.
종목 자체에 대한 이런 회의감은 보디빌딩 경기를 보고 완전히 사라졌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턱까지 찬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저거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로 저런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8년부터 보디빌딩 종목에만 출전하고 있다.
당시엔 내추럴 대회가 많이 없었던 시기라 사이즈나 근매스 차이가 심했지만 점점 (내추럴) 대회가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 참가자들과 경쟁이 될 만큼 성장한 것 같다. 첫 체급 1위는 2018년 5월에 열린 ICN 대회에서 기록했다.
직장인으로서 대회 참가를 병행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있다. 대회를 잡아놨는데 일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적도 있고, 배가 고프고, 잠도 좀 더 많이 자고 싶긴 하다. 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거고, 그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 그렇기 때문에 취미 활동이라고 하기엔 조금 하드코어(?) 해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웃음)
▲ 사진=신준희 제공
평소 대회 준비는 어떻게 하나
본업이 있기 때문에 두 달 넘게 대회를 길게 준비하기 보다 늘 체지방 자체를 낮게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하면 2~3주 정도의 준비 기간만 거쳐도 어느 정도 대회용 몸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2~3주만 다이어트해서 나간 대회가 많다. 이 부분이 보디빌딩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천천히 100% 내가 만족할 만한 최고의 몸을 만들진 못하니깐. 하지만 직업과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의 방법이다.
운동 루틴은
퇴근 후에 쇠질을 하는데 지금까지 3분할로 쭉 진행해 왔다. 하체, 등, 가슴 순으로 2번씩 돌리고 주 1회(일요일)는 휴식을 취한다. 어깨나 이두, 삼두 같은 경우엔 그날 메인 운동 후 추가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가끔 야근으로 헬스장에 못 가면 일요일에 운동 못한 부위를 보충해왔다.
부모님이 하드코어(?)한 취미 생활을 반대하진 않는지
처음에는 부모님도 대회 준비로 예민하고 몸도 상하는 걸 보면서 걱정은 하셨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대회에서 1등도 하는 모습을 보시곤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다.
올해 WNC 시그니처를 뛰기 전에 작년 UNF를 끝으로 공백기가 7개월 정도 있었다. 3~4월쯤부터 부모님이 ‘겨울도 끝났는데 너 대회 또 언제 나가냐’, ‘올해는 안 나가냐’ 하더라.(웃음) 이제는 부모님이 가장 든든한 서포터즈이자 응원단이다.
▲ 사진=신준희 제공
개인 웨이트 인생에 목표로 했던 오버롤을 거머쥐었다. 다음 목표도 있을까
보디빌더로서 최대 목표였던 오버롤을 차지해봤기 때문에 더 이상 없다. 다만 직장인도 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고, 가능하다면 건강하게 운동하는 방법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 나아가 이 운동을 행복하게 안 다치고 최대한 오래하는 사람으로 남는 게 다음 목표이자, 마지막 목표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말
아직 많이 부족한 나에 대한 스토리를 알릴 수 있어 기쁘고, 평소 즐겨 찾던 개근질닷컴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너무 영광이다.
운동을 함에 있어 결과는 매우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회 출전을 위해 몸을 만드는 시간, 그리고 성적이 조금씩 나아지는 소중한 순간과 경험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꼭 1등이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약물 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과정 자체에 집중하다보면 이 운동을 좀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웨이트를 즐기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득근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