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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을 뜻합니다. 보통 예술계에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죠. 역사적으로 피에타를 묘사한 조각 작품은 많지만, 대다수 사람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고 평가합니다. 사진=위키백과
홀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군입대 전,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었죠. 목적지를 이탈리아로 정한 건 세계문화유산 대다수가 모여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역사와 예술을 좋아해 도시마다 박물관을 찾아다녔는데,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꼭 보고 싶었던 것이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이자 건축가, 그리고 조각가였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미디어를 통해서도 자주 접했던 천지창조, 다비드상은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필자가 본 것 중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피에타]입니다. 당시 20대 초반의 어린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를 단숨에 거장의 반열로 올려준 너무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예수와 마리아를 표현하는 선을 보면, ‘이것은 조각이 아니라 사람이 조각 연기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부드럽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조각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돌을 깎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경이로웠고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도 그 때의 황홀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무슨 마음으로 저 돌을 깎았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어느날 대리석 가게를 지나다 방치되어 있던 거대한 원석을 발견하고 가져온 이후 무려 2년이란 노력의 결실 끝에 피에타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쉼없이 대리석을 두드린 그 마음은 신에 대한 경배였을까요.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의 예술혼이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 노력의 결과는 향후 수백년이 지나서도 전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사진=지성종 기자
올 여름 초, 한 보디빌딩대회를 취재했습니다. 선수들의 멋진 경기력과 훌륭한 기량들도 좋았지만,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회의 트로피입니다. 주최 측이 설명하길 “고대 조각가들이 돌을 깎아 작품을 만들 듯이, 자신의 몸을 조각하여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선수들을 형상화했다”라고 설명하더군요. 자신의 몸을 조각한다는 표현이 재밌고 딱 들어맞는 비유였기 때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봤던 조각상들이 생각났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조각가가 남긴 예술작품들처럼 ‘보디빌더들도 자신의 몸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예술인이라고 여겨도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돌 대신 자신의 몸을 재료로 삼은거죠. 예술가와 보디빌더라니, 다소 의아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예술가 못지 않습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맛이 없는 식단을 매일매일 지켜가며, 몸이 찢어지는 듯한(실제로 근섬유는 찢어지고 있죠) 고통의 고강도 훈련을 합니다. 몸에 망치를 대진 않지만 웬만한 둔기보다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고, 자신의 몸을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어냅니다. 말 그대로 ‘Body Building’이죠.
사진=지성종 기자
또한 보디빌더들은 영양사 만큼이나 영양학에 조예가 깊고, 의사만큼이나 생리학에 밝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음식을 어느 시기에 몇그램 단위로 쪼개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늘 고민합니다. 또 어떤 운동을 어떤 강도로 해야, 어느 근육이 얼마나 커질지 철저한 계획과 실천으로 자신들의 몸을 만듭니다. 마치 조각가들이 신중히 돌과 도구들을 고르고, 어디를 어떻게 부수고 깎을지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것처럼요.
여름의 그 대회 이후,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필자 역시 보디빌더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하는걸 느꼈습니다. 처음엔 근육의 사이즈, 근질, 선명도 같은 대회규정에 맞춰 그들을 바라 봤습니다. 하지만 이젠 어떤 포즈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손 끝부터 이어지는 몸의 선은 어떻게 발 끝까지 흘러가는지 등을 지켜보며 마치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필자에겐 보디빌딩&피트니스대회가 또 다른 미술관이 된 셈이죠. 차이점이 있다면 그 무대의 작품 감상은 시간이 한정 되어 있다는 것이겠네요.
[벨베데레의 토르소] ‘토르소’라는 말은 ‘몸통’이란 뜻입니다. 이 작품은 애초에 몸통 외의 부분은 소실된 채로 발견이 되었는데, 이것을 복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미켈란젤로가 “이것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사진=바티칸 박물관
예술가들을 보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항상 신기합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죠. 무대 위 그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오랜 기간 고군분투하였을 보디빌더들. 아니, 단상 위의 미켈란젤로들이 또 어떤 영감을 통해 또 얼마나 놀라운 작품을 보여줄지에 대한 작은 기대를 품고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지성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