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규는 지난달 28일 강원도 강촌에서 열린 WNGP 강원 내추럴 대회에서 오버롤 3관왕을 차지했다. 사진=권성운 기자
[개근질닷컴] “진정한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비롯되기에, 절망이 없는 희망보다 절망이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있다”
정호승 시인은 지난 2017년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시집을 발간 후 “내 인생에 고통이 없었다면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절망의 가치를 소중해함으로써, 진정한 희망의 가치를 느끼길 바랐다.
올해 43세가 된 백승규는 지난 2005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의사로부터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의 나이 27세에 찾아온 ‘최악의 절망’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그 순간, 백승규는 웨이트를 통해 한 줄기 빛을 맞이한다. 결코 쉽지 않은 재활을 묵묵히 참아내며 꼬박 2년 만에 스스로 두 발로 설 수 있게 된 백승규는, 그로부터 7년 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소방관이 된다.
그리고 다시 7년이 지난 2021년,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3개 종목(머슬·보디빌딩AGE·클래식보디빌딩) 오버롤을 달성한다. 절망에서 비롯된 그의 삶이 찬란한 희망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재활 운동을 쉬지 않고 꾸준히 했다. 절대 포기란 없었다”
▲ 사진=권성운 기자
오버롤 3관왕 축하한다
아직까지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생전 처음 해보는 대회용 다이어트와 수분조절로 인해 대회 당일 이명 증상이 약간 있었다. 거기다 눈에 실핏줄이 터져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정상적으로 대회를 끝내자고만 생각했는데 너무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쁘다.
돌이켜보면 무대에서 어떻게 포즈를 했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웃음) 주변에 훌륭한 선수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다음에 대회장에서 다시 만난다면 인사도 나누고, 좀 더 여유있게 대회 자체를 즐기고 싶다. 모든 것이 많이 부족하지만 과하게 큰상을 주신 대회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이번 대회에서 내추럴 선수로 유명한 마선호 선수와 머슬 오버롤전 및 보디빌딩 AGE 클래식 체급에서 두 번이나 붙어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마선호 선수는 영상을 통해 자주 접했다. 이번 첫 대회를 준비하면서도 선수님의 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냥 옆에 서서 함께 무대를 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오늘은 마선호 선수가 경기력 점검 차 나왔기에 망정이지 만약 100%의 컨디션으로 붙었다면 올킬로 내가 졌을 거다.
▲ 머슬 그랑프리전 비교심사. 사진=지성종 기자
앞서 생애 첫 대회라 했는데
오늘이 처음이다. 그동안 웨이트를 10년 넘게 취미로만 하다가 올해 코치님이 대회 출전을 권유해서 참가하게 됐다. 처음이라 긴장도 됐지만 좋은 성적을 거둬서 너무 기쁘다.
첫 대회라고 하기엔 몸의 완성도가 너무 좋더라
다시 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다. 코치님이 알려주는 운동법을 쉬지 않고 꾸준히 수행해왔다. 그 덕에 오늘 같은 몸이 만들어졌다.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했다면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다.
사실 교통사고 이전의 나는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 했다. 잠시 걷는 것도 싫어서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타고 다녔다. 집에선 온라인 게임을 밤새서 하고, 끼니는 배달 음식으로 때우기 일수였다.
사고 후에는 그런 환경들이 강제로 차단된 것도 있지만,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그 끔찍했던 경험이 내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꿈도, 희망도 없이 시간이 흐르는 데로 죽지 못해 사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이 악물고 운동에 전념했고,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
▲ 사진=지성종 기자
어느 정도의 사고였나
2005년도에 철물점 트럭에 치여서 이곳 춘천에 있는 병원에서 3일 만에 깨어났다. 당시 의사가 ‘이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생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때 나이가 27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내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진배없었다.
절망으로만 가득 찼던 그 시기 지금의 코치님을 만나 함께 재활을 중점으로 한 웨이트를 시작했고, 허리가 좋아지면서 전동 휠체어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재활 시작 후 조금씩 다시 걷기까지 약 2년 정도가 걸렸다.
휠체어를 벗어나 다시 걸었던 순간을 기억하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음…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 복잡한 감정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감히 말로써 표현이 불가능하다.
▲ 사진=백승규 제공
대회장 MC가 소개할 때 소방관이라고 하더라
현직 소방관이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후 소방관에 지원해 현재 7년째 재직 중이다.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 경찰이나, 소방관 준비를 많이 했다. 같이 어울리다 보니 영향을 받아서 자연스레 이 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새 삶을 얻었듯이 누군가가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재활에 성공한 후 소방관이란 멋진 직업을 갖게 됐다. 다만 육체적으로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일이라 걱정도 많았을 텐데
다행히 지금까진 육체적으로 크게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다. 다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일은 있었다.
?
초임 때 발령 받은 곳이 태백소방서였다. 거기서 팀원이자 동료였던 형님이 2016년 5월에 순직하셨다. 퇴근 후 늘 같은 헬스장에서 벤치 프레스나 스쿼트 보조를 서로 해주던 운동 메이트였는데,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충격으로 나 역시 재활 이후 놓아 본적 없던 덤벨을 한 동안 들지 못했다.
당시 형님이 강풍 때문에 지붕구조물이 머리로 추락해 순직하셨다. 그로 인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땀이 나는 등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많이 괴로웠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헬스장을 나가기 시작했고, 교통사고 이후 때처럼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었다.
하루는 형님과 함께 운동하다가 ‘승규는 운동 열심히 하니까 몸 만들어서 보디빌딩 대회 한번 나가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땐 그냥 농담으로 넘겼다. 오늘 상을 받고 나니 형님과 함께 즐겁게 운동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가더라.
▲ 사진=백승규 제공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이다. 오늘의 백승규가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다
항상 헬스장에 가는 남편과 아빠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준 사랑하는 아내 권지현, 딸 백채경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꼭 말하고 싶다. 교통사고 이후 반 폐인이나 다름없던 날 운동의 길로 이끌어주고 보디빌딩 대회 입상이라는 결과까지 맺게 해준 김태훈 관장님과 이윤석 코치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다이어트 하는 나를 위해 맛있는 식사와 야식을 시켜먹으며 내 멘탈을 강화(?)에 도움을 준 우리 강원도청 119 종합상황실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웃음)
내년에도 열심히 준비해서 올해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무대에 서겠다. 오버롤 3관왕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노력하겠다.
▲ 사진=권성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