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지성종 기자
[개근질닷컴] 보디빌딩(Body Building)은 아름다운 육체를 가꾸는 운동이다. 근육의 모양 및 크기와 균형미에 맞게 몸을 단련하고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디빌딩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스포츠장르의 보디빌딩은 낯설고 생경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보디빌딩 역사와 대한보디빌딩협회
▲ 사진=SNS사진 캡처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 규모 보디빌딩 대회인 ‘제1회 미스터코리아선발대회’는 1949년에 열렸다. 당시에는 보디빌딩에 대한 체계와 인식이 잡혀 있지 않은 탓에 체급 없이 일반부 경기만 진행됐다.
이후 5년이 지나고 나서야 일반부와 학생부가 분리됐고, 1965년에 단신부와 장신부로 나뉜 체급이 적용됐다. 하지만 종목과 스포츠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초기엔 ‘역도(Weight Lifting)’의 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세계보디빌딩연맹(IFBB) 역시 한국에서 첫 대회가 열린 지 약 20년이 지난 1968년에 이르러서야 가입했다.
꾸준히 미스터코리아 대회가 열렸지만 여전히 한국 보디빌딩은 ‘집’이 없는 채로 수십년을 보냈다. 1980년대까지 대한역도연맹 보디빌딩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운영되면서 독립된 협회로 기능하지 못한 까닭이다.
한국 엘리트 체육은 각 협회나 연맹을 통해 전반 운영을 하고,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로 정부 지원을 받는다. 이 같이 협회 창설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보디빌딩의 대중화는 오랜 시간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1984년에 제20회 아시아보디빌딩선수권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 것을 기점으로, 3년 뒤인 1987년, 드디어 한국 보디빌딩인의 염원이었던 대한보디빌딩협회(이하 대보협)가 창설된다.
▲ 사진=대한체육회
이듬해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대한민국 보디빌딩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올림픽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보디빌딩이 일부만의 취미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의 한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보디빌딩은 1990년 제71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 전국체전은 올림픽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회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국체전 정식 입성은 본격적으로 엘리트 스포츠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는 의미였다.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는 사설 대회를 포함해 연간 수 백여개에 이른다. 초기와 차이는 있다. 기존엔 엘리트 선수 위주의 대회만 열렸다면, 최근에는 바디 프로필과 홈 트레이닝 등 피트니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일반인과 동호인의 참여도 매년 늘고 있다. 보디빌딩이 엘리트 스포츠에서 생활 스포츠로 확장되는 과도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대한보디빌딩협회(KBBF) : 한국 보디빌딩의 기둥, 그러나
▲ 사진=대한보디빌딩협회
대한보디빌딩협회는 대한민국 보디빌딩의 집이며 기둥이다. 1987년 대한역도연맹으로부터 분리 창설된 이래로 보디빌딩이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실제로 대보협이 창설된 후 1991년 제27회 아시아보디빌딩선수권대회를, 1993년에는 제47회 세계보디빌딩선수권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하면서 한국은 아시아 보디빌딩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나아가 2002년 한국에서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보디빌딩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당시 보디빌딩 국가대표팀이 금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며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거듭났다. 이때만 하더라도 국제대회 성과와 함께 대한민국 보디빌딩은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드러났다. 대보협 산하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2005년 전국체전 보디빌딩 경기에서 무려 8명이 도핑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공개한 ‘최근 10년간 금지 약물 위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금지 약물 위반 횟수는 총 254건이며 그 중 보디빌딩 종목은 151건으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최근 10년간 매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KADA에 공지된 2007년~2021년 도핑 위반 제재 건수. 그래픽=권성운 기자
최근 5년간(2017~2021년 8월)으로 적발 범위를 좁히면 총 116건이다. 종목별로는 보디빌딩이 60건으로 51.7%, 야구(프로야구 포함) 10건(8.6%), 카누, 역도가 각각 4건(3.4%) 순이다.
연도별로는 Δ2017년 24명(68.5%) Δ2018년 17명(85%) Δ2019년 10명(37%) Δ2020명 6명(20.8%) Δ2021명 4명(40%) 등으로 최근 5년간 매년 최다 1위였다.
이처럼 대보협은 한국 보디빌딩에 만연한 약물 문제를 통제하지 못해 엘리트 스포츠로서보디빌딩의 위상이 위축되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대보협은 2005년 이후부터 출전 선수 전원에 대해 도핑검사를 의무화하고, 금지약물 양성반응자를 ‘영구제명’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뒤늦은 처사였다. 일부 선수들 사이에서 약물은 빈번하게 사용됐고, 철저한 도핑검사 아래서도 약물 사용은 근절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2008년에는 전 국가대표를 포함한 보디빌딩 선수 8명이 스테로이드제(근육강화제)를 밀수해 유통시켜오다 세관에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결국 보디빌딩은 2019년 전국체전에서 시범종목으로 강등되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3대 보디빌딩대회와 대중화
▲ 사진=개근질닷컴DB
현재 국내 최고 권위의 3대 보디빌딩 대회는 전국체전, 미스터코리아(Mr.&Ms.Korea), 미스터YMCA(Mr. YMCA)다. 해당 대회는 한국 유일의 공인 도핑 기구인 KADA를 통해 강도 높은 도핑검사를 받는다.
이들 대회는 대한체육회와 대한보디빌딩협회가 주최하는 전국규모 대회로 3개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는 사실상 ‘엘리트 보디빌딩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는 선수라면 경기력이 수준급인 동시에 그만큼 약물로부터 거리가 먼 선수라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대보협은 선수등록이 된 엘리트 선수를 대상으로 사설대회 출전에 제한을 둔다. 동시에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등록 선수로서 KADA의 상시 도핑 검사를 받게 된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약물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강력하게 제약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보협의 엄격한 통제에도 대한민국 보디빌딩은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전국체전에서 시범종목으로 강등을 당하면서 많은 실업팀은 해체하게 됐고,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1년에 몇 차례 열리지 않는 대보협 산하 대회만을 준비하기엔 무대도, 환경도 턱없이 부족하다.
▲ 사진=지성종 기자
게다가 대보협 주관의 대회들 역시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과거 이승철, 강경원 등 걸출한 선수들이 대보협 산하 지역대회 우승자 출신인데 반해, 현재 지역대회 우승자들의 경기력은 과거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3대 보디빌딩대회만 명맥을 잇는 것은 보디빌딩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보디빌딩이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대보협 주도하의 ‘클린 보디빌딩’으로 인프라가 탄탄히 받쳐져야 한다. 이를 통해 생활체육으로까지 확장해 보디빌딩&피트니스 동호인과 팬이 증가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보디빌딩의 대중화와 약물 근절은 현재 대보협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수많은 숙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