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지성종 기자
[개근질닷컴] 안락함은 마약과도 같다. 보장된 삶과 꾸준한 결과에서 오는 안정감은 웬만한 용기가 없고 서야 쉽게 끊을 수 없는 법이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더 눈부시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작은 매우 달콤한 말이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불안과 초조, 고난과 역경이 모두 담겨있다.
레슬링 국가대표,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가 있다. 이정근, 그는 레슬링 지도자의 길이 아닌 보디빌더라는 신세계로의 문을 두드렸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선수의 삶, 그 고난의 굴레를 스스로 다시 짊어진 셈이다.
▲ 사진=지성종 기자
그나마 다행인 건 너무나 낯선 세계에서 갈팡질팡하던 그가 길잡이와도 같은 스승 김명섭을 만났다는 것. 덕분에 이정근은 보디빌딩을 시작한지 약 7개월만인 지난 10월 ‘2021 미스터세종 대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무려 첫 대회 출전에서 말이다.
인터뷰①편 <'레슬러' 이정근, 신세계로 향하다>에 이어 이정근과 그의 스승 김명섭을 함께 만나봤다. 좋은 성적으로 김명섭에게 보답하고싶다는 이정근과 이정근에게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싶다는 김명섭. 두 사람의 인연과 그들의 확고한 목표에 대해 들어본다.
▲ 사진=지성종 기자
현재 김명섭 선생님께 운동을 배우고 있습니다. 김명섭 선생님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이정근: 국가대표 생활을 하면서도 웨이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어요.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웨이트에 대한 관심이 보디빌딩까지 이어졌죠. 보디빌딩을 하고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하나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 ‘김명섭의 헬스교실’을 보게 됐어요. 처음엔 선생님 영상을 보면서 따라했습니다. 이후에 직접 김명섭 선생님께 배운다면 제가 목표한 바를 이룰 수도 있고, 꿈도 한발짝 더 가까워질 것 같아 바로 선생님을 찾아갔죠.
김명섭: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괜히 어색하네요.(웃음)
2020년 6월경이었을 거예요. 정근이가 저를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정근이가 레슬링 선수였어요. 저를 찾아와서는 대뜸 자기는 이제 보디빌딩이 하고 싶다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그래? 그럼 일단 몸부터 보자”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이라고 하니까 몸에 대한 기대가 꽤 컸어요. 레슬러니까 근력 운동이나 지구력 운동을 많이 했을 거라고 짐작했거든요.
함께 탈의실에서 몸을 봤는데, 이게 웬걸. 제가 기대한 만큼의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당시 정근이 몸은 복직근만 선명하게 나와있었고, 다른 부위는 다 약했습니다. 레슬러들은 당기는 운동을 많이 하니까 등은 그래도 좋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등도 전혀 없는 거예요! 겨드랑이 밑에만 살짝 나오고. 그냥 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하.
▲ 사진=지성종 기자
이정근 선수, 지금 당황한 것 같은데요? 하하. 이정근 선수는 김명섭 선생님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정근: 일단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와 닿았고요. (장난)
선수라고 하면 대체로 부상이나 컨디션 관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려면 처음 시작할 때 정확한 자세와 부상이 없는 훈련 방법을 배워야하죠. 선생님께 배우면 선수 생활도 오래 할 수 있고, 근육 성장도 빠를 것 같았습니다. 또 현재 굉장히 만족하고 있고요.
김명섭: 정근이는 제가 뭔가를 해주는 것처럼 대답했지만, 제가 이정근 선수한테 뭔가를 해주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스스로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껏 지켜봤을 때, 제가 지도를 잘 했다고 보기 보다는 저 친구가 레슬링을 해서 그런지 근력, 지구력 같은 밑바탕을 잘 갖췄어요. 기본이 있으니까. 여기에 체계적으로 음식 조절을 더했더니 근육이 붙는 속도가 남들보다 좀 더 빨랐습니다.
▲ 사진=지성종 기자
두분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이정근 선수의 평소 운동 루틴이 궁금해요.
이정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웨이트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지금도 계속 배워가고 있고요.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 사진=지성종 기자
김명섭 선생님이 직접 루틴을 짜주시는군요?
김명섭: 저 친구는 아직까지 운동 루틴이 없어요. 정근이는 제가 ‘이거 해라’ 말하면 딱 그 한 가지만 합니다. 성격이 한 가지만 파는 스타일이죠.
일반적으로 하체운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스쿼트, 레그 프레스, 레그 익스텐션, 레그 컬> 이런 식으로 루틴을 정해서 하잖아요. 저 친구는 제가 만약 ‘너는 하체가 약하니까 매일 맨몸 스쿼트 천 개씩 해’라고 하면 매일 천 개씩을 하는 애입니다. 저는 정근이의 그런 모습이 좋았죠.
▲ 사진=지성종 기자
설마 진짜로 매일 스쿼트만 천 개씩 한 건 아니죠?
김명섭: 스쿼트는 아니고요. (웃음)
처음에 제가 정근이에게 등 운동부터 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등 운동 무엇부터 하면 될까요?”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랫풀다운부터 하라고 했어요. 정말 거짓말 안하고 처음에는 랫풀다운만 했습니다. 하루에 거의 한 30에서 40세트씩 했죠.
한동안 다른 운동은 하지도 않았어요. 계속 등 운동만 시켰는데, 어느 순간 느껴지더라고요. 정근이 이 친구가 근성이 있다는 게 말이죠. 정근이는 뭘 시키면 못한다는 소리가 없어요. 하라고 하면 무조건 다 합니다. 그거 하나가 참 제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또 인성을 좀 많이 중요시하거든요. 정근이를 보면 선후배에 대한 예의범절도 좋고, 사람이 굉장히 따뜻해요.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니 저도 목표가 섰습니다. ‘저 선수를 키워서 나도 보디빌딩 국가대표를 한번 만들어보자’라고요.
▲ 사진=지성종 기자
김명섭 선생님께 여쭤 볼 게요. 이정근 선수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김명섭: 우리 이정근 선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거는 당연한 거고, 그 과정에서 저를 징검다리로 삼아서 자기가 목표로 하는 걸 꼭 이뤘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근이한테도 얘기를 합니다. ‘내가 너를 키우는 게 아니고 단지 네가 목표로하는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바르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이라고요. 저는 안내를 해주는 것 뿐이고, 그 길을 걷는 거는 본인이잖아요. 저는 그래서 정근이한테 절대 저를 100퍼센트 믿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요. 저는 단지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뿐입니다.
▲ 사진=지성종 기자
와, 정말 멋진 스승이십니다. 이정근 선수도 스승님께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이정근: 괜히 쑥스럽네요. 김명섭 선생님은 보디빌딩이라는 세계에 눈을 뜨게 하신 분이에요. 제가 아직도 보디빌딩에 대한 지식도 없고, 많이 부족합니다. 선생님께 정말이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배우고 있어요.
게다가 선생님께서 정말 가족같이 챙겨 주십니다. 매일 컨디션부터 체중, 운동 스케줄 등 사소한 것 하나부터 다 체크해 주시고, 계획을 함께 짜 주시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빨리 보디빌딩에서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어요.
인터뷰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