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일영 기자
[개근질닷컴]
류제형은 지난해 11월 9일부터 13일(한국시간)까지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열린 제13회 세계남자클래식보디빌딩선수권대회 클래식 보디빌딩 종목 -175cm 체급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금메달과 통합 오버롤에는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심각한 허리 부상을 이겨낸 ‘금메달만큼’ 값진 은메달이었다.
한국 보디빌딩의 위상을 널리 알린 류제형을 <개근질닷컴>이 찾아갔다.
허리 통증에 몸도 못 가누면서도...금메달 보다 값진 은메달
▲ 사진=이일영 기자
근황이 궁금하다
아직 비시즌이어서 보시다시피 이렇게 영양은 과포화 상태고(미소를 지으며) 개인 운동 하면서 일반 회원분들 PT와 함께 후배 양성도 병행하고 있다. 부산에서 올라온 축구선수 출신의 강재현이란 예비 선수와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의 홍성진이란 예비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둘 다 올해 대회에 처음 나가는 거라 많이 다듬고 있다.
부상은 많이 회복됐나
현재는 많이 괜찮아졌다. 그렇지만 부상 자체는 고질적이다. 2017년 허리디스크가 생겼는데 그때가 진짜 안 좋았다. 현재도 척추관협착증을 앓고 있어서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 그 외에도 어깨가 좋지 않은데, 이 부상들은 그냥 안고 가는 거다.
부상 이전과 이후 어떻게 다른가
몸에 맞춰 운동 루틴을 가져가야 한다. 컨디션 관리와 운동 스케줄 조절이 힘들다. 이전에 준비하던 방식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운동량이 줄어 칼로리 소모를 과거만큼 못하니까 영양 섭취도 그만큼 줄이기도 해야 하고 운동방법도 바꿀 수밖에 없더라.
영양섭취와 운동량 부족이란 이중고는 어떻게 극복했나
다른 것보다 계획했던 것만큼 못하니까 그게 가장 힘들었다. 첫 부상이 왔었던 2017년엔 정신적 공황이 올 정도로 힘들었다.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먼저 있었던 2017년 10월 전국체전은 성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뛸 수 있을까’란 고민을 진짜 많이 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 정도로 부상이 심했나
(고개를 끄덕이며) 만약 맞닥뜨린 대회가 ‘미스터 코리아’였다면 정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국체전은 실업팀에 소속돼 있는 몸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한번 해보자’란 마음으로 나갔다.
이런 방법으로, 저런 방법으로 운동해보면서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딱 한 달 정도를 앞두고 현재 부상 정도에 맞는 운동 방법을 찾았다. 그때 조언을 구했던 분이 있다.
누군가?
스승님인 이진호 선수다. 스승님도 부상이 정말 많았기에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스승님께서 ‘안 되는 걸 붙잡고 끝까지 하지 말고 되는 것 위주로 더 해봐’란 조언을 해준 게 진짜 터닝포인트가 됐다.
예를 들면 하체 운동 같은 경우에도 개인적으론 스쿼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하지 못했을 때 개인적으론 굉장히 답답했다. ‘이러다 다리를 만들 수 있을까’란 걱정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으니. 그때 스승님이 ‘지금 많이 만들어 놓은 상태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가능한 운동만 해도 충분하다’라고 조언해준 덕분에 더 무리하지 않았다. 경험이 정말 많으신 분인 만큼 심리적 안정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 사진=이일영 기자
컨디션과 운동 강도 간의 균형을 찾는 게 쉽지 않았겠다
강도라고 하면 무게, 횟수, 휴식시간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상 이후 가장 부담이 됐던 건 무게였다. 이 때문에 한계점을 낮춰서 무게를 대폭 줄였다. 그렇다고 대신 횟수를 많이 늘리면 그것 또한 갑작스럽게 무리가 올 수 있어서 무게와 횟수의 적정선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래선지.
?
2017년 운동을 마치고 나면 늘 ‘찝찝한 마음’이 있었다. 진짜 가장 힘들었던 해는 지난해가 아니라 2017년이었다.
류제형은 심각한 부상으로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못했던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 클래식 보디빌딩 금메달은 물론 오버롤까지 오르며 진정한 세계 정상에 섰다. 이어 2018년 세계선수권에서도 대회 직전 재발한 부상을 이겨내고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 세계선수권 보디빌딩-피지크 이환희 코치는 "류제형 선수가 비록 디펜딩은 하지 못했지만 금메달 이상으로 감격스러운 은메달이었다”며 “허리 부상으로 몸을 못 가눌 정도였는데 무대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내려온 이후 쓰러지는 걸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타인들이 보기엔 정상적으로 대회에 출전한 것만 해도 기적이었지만 류제형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되레 그때를 회상하며 특유의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201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경기 직전 허리 통증으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끝까지 경기 출전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뭐였나
선수들과 코치, 감독님 간의 단합도 잘 되면서 다른 해보다 더 끈끈하고 돈독하기도 했다. 그랬기에 더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사실 나로선 쭉 달고 있던 거라 놀라지 않았는데, 지켜보는 분들이 더 놀랐던 것 같다.
더 그랬던 게 경기 당일 직전에 펌핑을 하다 허리에 ‘뜨끔’하면서 통증이 온 거다. 만약 대회 기간이 아니라 평소였다면 약 2주 정도는 제대로 거동을 못 할 정도? 그런 충격이 올 때 허리디스크 환자들의 통증에 대해서 알고 있나?
▲ 사진=이일영 기자
간접적으로 전해 듣기만 했다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이 들면서 발끝을 드는 것도 힘들다. 그런 느낌이다. 움직이지 못하고 보통은 누워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땐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수준까진 아니었다. 딱 그 생각을 했다. ‘쓰러지더라도 무대 위에서 쓰러져야겠다’라고. 그런 각오로(웃음).
코칭스태프로부터 무대 마친 직후 서 있지 못할 정도로 탈진해서 쓰러졌다고 들었다
경기를 치를 때도 계속 몸 한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려가서도(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은메달의 순간 떠올랐던 감회가 남달랐겠다
솔직히 (조금 뜸을 들이다가) 되게 많이 아쉬웠다. 1등을 하려는 마음을 먹고 갔었는데 그렇게 결과가 안 나왔으니까.
음
그것도 이유가 있다.
?
2012년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7회 세계남자클래식보디빌딩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첫 우승을 했을 때였다. 그땐 예선과 결선으로 나눠 이틀에 걸쳐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첫 출전이기도 했고 워낙 경쟁 선수의 몸이 좋았다. 거기다 불가리아 자국 선수가 2명이나 결선에 출전해서, 속으로 낙담하며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런데 첫날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서 당시 대한보디빌딩협회 홍영표 수석부회장님이 ‘왜 이렇게 주눅 들어 있어? 여기 우승하러 온 거 아니냐.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했으면서 왜 그러고 있냐’고 내게 말하는 거다.
각성이 됐겠다
그 말을 듣고 반성을 많이 했다. 불과 하루 동안 운동을 한다고 몸이 달라질 수 없지 않나.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정말 많이 신경 썼다.
당시 예선에선 불가리아 선수에게 뒤져 2위를 했는데, 본선 무대서 그 결과를 뒤집고 세계선수권 첫 금메달을 땄다. 그 후론 국제대회만큼은 무조건 ‘1등을 한다’는 마음을 먹고 나간다. 그러니까 더 아쉬웠던 거다.
▲ 사진=이일영 기자
국내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하고 세계 대회는 2순위로 생각하는 선수도 있을텐데
사실 국내엔 워낙 좋은 선수가 많고 체급 내에서 나의 한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국체전 성적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게 크진 않다. 그러나 국제대회는 체급 자체도 내게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포커스를 두는 편이다.
세계무대에서도 클래식 보디빌딩뿐만 아니라 클래식 피지크 등 다양한 종목이 확대되고 있다
아마추어 대회와 프로 대회 통틀어서 클래식보디빌딩, 피지크, 클래식 피지크 종목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에도 클래식 피지크 정식 종목이 있었는데 우린 대표선수를 뽑지 않았다.
클래식 피지크의 경우엔 클래식 보디빌딩보다 2kg 정도 체중 제한에 여유가 있어서 근육량 대비 체중 감량을 많이 하는 내게도 유리할 수 있는 종목이다.
만약 올해 클래식 피지크 국가대표를 선발한다면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해당 종목에 나설 계획이 있다. 클래식 피지크는 경기복이 우선 드로즈(사각팬티)를 입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고 포즈도 다르다.
당신은 포징이 예술적인 선수이며 무대를 지배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스마일맨’은 이제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무대를 즐긴다’는 건 완벽하게 나 자신이 준비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관중들이나 심판위원들이 보면 객관적으로 다 알 수 있다. ‘선수가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를 말이다. 그때 스스로 어색해하면 보는 이도 느끼게 된다. 그런 이유로 최대한 즐기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그걸 위해 피나는 반복연습을 한다.
반복?
그렇다. 사실 내가 박치(웃음)라서. 국내대회는 자유포즈가 점수엔 들어가지 않지만 국제대회는 포징의 점수 비중이 꽤 높다. 특히 라운드 하나가 아예 자유포즈기 때문에 중요해서 음악을 정해 놓고 1년 내내 포징 준비를 한다.
1년?
그렇다. 아까 말했던 2012년 불가리아 대회도 딱 1곡을 1년 내내 연습했다. 당시 클래식 보디빌딩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하기도 했고. 그런데도 박자를 잘 못 맞췄다. 요즘 인기가 많은 밴드 퀸의 ‘The Show Must Go On’이란 곡으로 준비를 했었는데, 그렇게 연습을 하고서도…
하고서도?
첫 도입부 박자를 틀렸다.
(일동 웃음)
물론 긴장한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박자를 못 맞춘다. 그때 이후엔 포즈를 단순하게 바꾸고,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을 짠다. 또 음악도 가사가 없는 BGM 위주로 박력 있는 음악을 쓴다. 그게 근질의 강점을 돋보이게 표현하는데 더 적합하더라. 물론 그래도 1년 내내 연습한다.
▲ 사진=대한보디빌딩협회
국가대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개인의 명예는 물론 중요하다. 그걸 빼놓는다면 거짓말일 거다. 동시에 그만큼 국가대표란 책임감도 크다. 보디빌딩계에선 대한보디빌딩협회를 통해 국가에서 선발되는 유일한 태극마크이지 않나. 내 개인적으론 그동안 쭉 ‘태극기’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뒀다. 1년을 세계선수권만 보고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국대 히스토리는?
사실 2012년 첫 금메달 이후 클래식 보디빌딩은 다시 출전하지 않으려 했다. 왜냐면 그 체중과 조건을 맞추는 게 정말 힘들었다. 정말 당시엔 억지로 맞춘 수준이라 안정권인 77.5kg에 맞추는 게 당시엔 진짜 쉽지 않았다. 그렇게 2013년을 걸렀는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던 계기가 있었다.
계기?
설기관 선수와 개인적으로 친하다. 그 설기관 선수가 ‘함께 클래식보디빌딩을 나가자’고 설득을 했다. 개인적으로 클래식보디빌딩이란 종목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건 ‘내 체형과 조건에 딱 맞는 내 종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애착도 있었던 터라 다시 마음을 다져서 이후 가능한 많은 국제 대회에 출전하려 한다.
인터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김원익 기자(one.2@foodnam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