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더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저 자신을 많이 위로하면서 이 길을 걸어왔던 것 같아요”
지난 2일부터 7일 스페인 산타 수산나에서 ‘2022 세계남자보디빌딩선수권대회’가 열렸다. 12명의 국가대표 모두 빛나는 무대를 선보였지만, 이들 중에서도 황순철은 유독 더 돋보였다. 6일 동안의 일정 중 모두 5번의 경기를 뛴 황순철. 그가 18년, 19년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서 애국가를 퍼뜨리는 순간은 무대 지켜보는 이들에게 묘한 전율을 선사했다.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태극전사, 황순철을 만나봤다.
▲ 사진=장희주 기자
Q, ‘세계남자보디빌딩선수권대회’ 금메달 획득을 정말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웃음) 앞선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던 만큼 올해 대회는 솔직히 부담감도 크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현지에서 대한보디빌딩협회(이하 대보협) 임직원분들, 단장님, 부회장님 그리고 감독님과 코치진분들께서 계측 전부터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부담감을 내려놓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어요.
특히 계측 때 신경이 많이 예민해지거든요. 보통 해외대회는 계측이 7~8시간 정도 걸리는데, 팀 코리아 관계자분들이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저희를 대신해 줄을 서주기도 했어요. 덕분에 계측하는 데 30분밖에 안 걸렸죠. 무대에 오르기 전 컨디션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이런 디테일한 도움들이 컨디션 조절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팀 코리아 관계자분들 덕분에 올해 대한민국이 좋은 성적을 이루지 않았나 생각해요.
▲ 사진= IFBB 공식 인스타그램(@ifbb_official)
Q,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많은 국가, 선수들이 참석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올해는 다행히 코로나19가 완화가 된 상황이어서 많은 국가에서 참가했습니다. 그만큼 출전 선수도 매우 많고, 오히려 18년도 대회 때보다 더 활기찼던 것 같아요. 밝은 분위기 덕분에 저 역시도 무대를 좀 더 즐길 수 있었습니다.
▲ 김종석 팀 코리아 단장. 사진=대한보디빌딩협회
Q, 현지에서 컨디션은 어땠어요?
중복출전이 가능해지면서 이번 대회 기간 경기를 5번이나 뛰었어요. 다행히 첫날 금메달을 따내서 일찍이 부담감을 덜 수 있었죠.
중복 출전은 처음이었는데, 득과 실이 확실한 것 같아요. 첫 경기에는 집중을 잘 할 수 있지만, 마지막 경기 때는 처음 때보다 컨디션 관리를 잘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내년에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잘 생각해야 할 부분 같아요. 중복 출전으로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점점 컨디션이 떨어질 확률이 크다는 점 말이죠. ‘메인 경기를 무엇으로,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전략을 잘 짜야 할 것 같아요.
▲ 사진= IFBB 공식 인스타그램(@ifbb_official)
Q, 5일 내내 무대라니, 정말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을 것 같아요
‘안 피곤하다’고 자신을 많이 다독였던 것 같아요. 사실 당시에는 피곤한지 잘 몰랐거든요. 모든 경기를 마치고, 인제 와서 그 과정을 되돌아보니 정말이지 쉽지 않았더라고요. (웃음) 현장에서 동료들이며, 감독님이나 코치분들께서 많이 도와줘서 그땐 피곤한 줄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서로 의지하면서 이겨냈던 것 같아요.
Q, 여러 종목을 뛰었던 만큼 체중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제가 주력으로 뛰는 종목은 체중이 76kg 정도 나와야 하는데, 중복으로 출전하는 타 종목의 경우 최고 83kg까지 출전할 수 있었어요. 76kg은 거의 웰터급이고, 85kg이면 미들급이잖아요. 한 체급 높은 선수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확실히 부담도 크고, 어려웠어요. 그래서 체형 차이를 비롯한 여러 약점을 어떻게 커버하느냐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내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선수들도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오히려 컨디션 관리나 여러 부분을 고려했을 때, 중복 출전보다 주 종목에서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무대에 오르기 직전, 준비는 어떻게 했어요?
스페인에 있는 6일 내내 헬스장과 사우나만 다닌 기억뿐입니다. 식단을 비롯한 기본적인 부분은 한국과 동일하게 이어갔어요. 경기를 한번 뛰고 나면 바로 사우나로 가서 기존 체중을 2~3kg씩 빼야 했죠. 그래서 이번 대회는 그냥 온종일 사우나, 헬스장에만 있던 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네요. (하하)
▲ 사진=장희주 기자
Q, 대회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홀가분한 마음일 것 같아요.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시즌오프도 했고, 체력관리를 위해 일단 건강검진을 좀 받아볼 계획입니다. 그저 잘 쉬면서 그동안 잘 먹지 못했으니까 먹으면서 잘 회복할 생각이에요.
Q, 건강검진이요? 혹시 부상이나, 아픈 곳이 있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몸이 불편하지는 않은데, 10년도 더 전에 어깨를 좀 다쳤어요. 더 좋은 컨디션 위해서 어깨 쪽에 신경 쓰려고요.
Q, 다행입니다. 내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음, 내년에 은퇴를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 전국체전을 끝으로 은퇴해야지’라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인터뷰가 정말 좋은 기회일 수 있네요. 개근질닷컴을 통해 이렇게 말을 하면 계획이 또 안 바뀔 테니까요. (웃음) 은퇴 시점에 대해서는 꾸준히 생각해왔어요. 일단은 내년쯤으로 생각하고 있고,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보고 준비할 계획이고요. 내년 미스터코리아, 전국체전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 사진=황순철 제공
Q, 은퇴라니…섭섭한데요?
스포츠 선수에게 있어 은퇴라는 건 종목을 막론하고 아마 공통점이 있을 거예요. 아마 ‘쓸쓸함’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죠. 그렇다고 은퇴라는 게 결코 나쁜 부분은 아니거든요. 좋은 부분도 분명히 있고, ‘제2의 인생’이 시작하는 거니까요.
보디빌더에게 어떻게 먹을 거 먹지도 못하고, 운동만 하면서 살아가냐고 물으면, 대부분 ‘괜찮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그런데 보디빌더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저 자신을 많이 위로하면서 이 길을 걸어왔던 것 같아요. 내 젊음을 다 바쳐 식단 조절을 하고, 운동을 했으니까, 이제는 좀 편하게 식사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그런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물론, 또 한편으론 미련도 많이 남고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은퇴라는 부분을 생각하면 미련과 위로, 기대 등 아마 복잡한 심경이지 않을까요? 그저 잘, 좋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 사진=장희주 기자
Q, 혹시 은퇴를 결정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을까요?
기회죠. 후배들에게 좀 더 폭넓은 기회를 주고 싶어요. 제가 현역으로 있음으로써 빛을 못 받는 선수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요. 훌륭한 기량을 갖춘 후배 선수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어요. 아마 이런 마음은 선배들, 후배들 모두 같은 마음일 거예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주고 싶고, 또 당연히 젊은 친구들이 기회를 가져가야 하는 거고요. 저보다 더 훌륭한 후배들이 많으니까 분명 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Q, 멋지십니다.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마음가짐도 남다를 것 같아요
은퇴 무대라고 말을 하기에는 좀 민망한 것 같아요. (웃음) 끝은 늘 시작이라고 하잖아요? 엊그제 올해 대회가 끝났지만, 끝은 시작이기 때문에 다시 준비를 시작하려고요.
Q, 벌써요? 엊그제 대회가 끝났는데…
비시즌이라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아요. 항상 늘 지켜왔던 패턴대로 할 거고, 식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이트한 편이죠. 누군가는 제게 ‘대회도 끝났는데 너무 타이트하게 한다. 어리석다’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비시즌이라고 못 놓겠더라고요. 제 방식이 절대 맞는다는 게 아닙니다. 저 역시도 스스로 ‘나는 괜찮다, 괜찮다’고 격려하거든요. 20년 넘게 이 생활을 했는데도 시즌마다 ‘시즌이 끝나면 좀 즐겨야지’ 하면서도 그 부분이 좀 잘 안 돼요. 정말 어렵더라고요.
▲ 사진=장희주 기자
Q, 대단하십니다. 역시 이런 노력이 모여 오늘의 황순철 선수가 있는 거겠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제가 다 감사하네요. (하하)
그래도 후배들에게 저처럼 하라고 추천하지는 않아요. 비시즌에는 조금 내려놓고 보양식도 좀 먹으면서 다음을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푹 쉬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시즌 때 그 힘을 받아 더 집중할 수 있길 바라요. 결코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저마다 꾸준히 준비하고, 묵묵히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히 기회가 오더라고요.
Q, 앞으로도 지도자의 길은 꾸준히 이어가시는 거죠?
당연하죠. 은퇴하더라도 선수 육성에는 계속 신경을 쓸 계획이에요. 계속 지도자로 이어 나갈 겁니다.
▲ 사진=장희주 기자
Q, 혹시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 전하고 싶은 분 있나요?
그동안 제대로 감사인사를 못 한 친구가 있어요. 대학 후배인 ‘김선우’라는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친구가 대학교 한 학년 후배예요. ‘절대 남자’ 등 방송에서 1세대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활동했죠. 이 친구가 가끔 조언을 해줬어요. 2017년도에는 클래식보디빌딩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17년도부터 주 종목을 클래식보디빌딩으로 바꾸게 됐습니다. 종목을 바꾸고 나서 성적이 좀 더 잘 나왔고요. 그 친구의 조언과 격려 덕분에 국가대표도 되고, 성적도 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꼭 좀 전해주고 싶어요.
Q, 끝으로 자유롭게 한마디 해주세요
항상 지금처럼 묵묵히 제 길을 이어가겠습니다. 더 좋은 선수이자 지도자가 될 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