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병정 기자
[개근질닷컴] 버들 유(柳) 옥돌 연(瑌), 푸른 버들 아래 눈부신 빛을 내는 천연의 옥이 있다. 바로 ‘유연’이다.
유효선. 세계피트니스선수권 국가대표 유연의 개명 전 이름이다. 올해 1월 개명한 그녀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4월 춘계 대회부터 Mr.&Ms. 서울, 인천광역시장배, Mr.&Ms. 코리아, 동아시아선수권, Mr. YMCA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유연은 올해 최고의 성적과 함께 이름만큼이나 찬란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그토록 염원하던 첫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동아시아선수권에 출전, 은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했다.
“국가대표는 내게 자부심이자, 자긍심이다”
유연은 올해 자신의 모토인 ‘직면하자’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모든 과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그 결과, IFBB 세계선수권 최초의 여성 국가대표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여기에 단순 참가를 넘어 아시아 여성 최초 세계선수권 메달을 노리는 유연의 각오는 그 어느때 보다 비장하다.
유연(油然)하다: 생각 따위가 저절로 일어나는 형세가 왕성함.
▲ 사진=김병정 기자
동아시아선수권 국가대표 선발 후 두번째 태극마크다
대한민국 최초로 IFBB 세계선수권 여자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돼 무한한 영광이다. 좋은 결과를 위해 지금까지 해 온 훈련이랑은 차원이 다른 강도로 준비 중이다. 기존 국내 대회에 참가했을 때완 달리 서양 선수들의 쉐이프(shape)에 맞춰서 몸을 만들고 있다.
어떻게
서양 비키니 선수들을 보면 어깨나 골반이 굉장히 큰 반면 허리가 굉장히 가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고립에 신경 쓰면서 운동 중이다. 상체 볼륨도 잘 살려야 해서 식단도 다르게 가져 가고 있다. 단백질 양을 늘리고 탄수화물은 줄이면서 실제 서양인들이 먹는 식단으로 완전 바꿨다. 그냥 서양인이 되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웃음).
각오가 대단하다
앞서 말했듯 세계선수권에 참가하는 첫 여자 국가대표란 사명감 때문인 것 같다. 나 혼자만 나간다면 처음이니깐 좋은 경험이라 가볍게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단체로 나가는 국제 대회라서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국가대표) 신청할 때만 해도 ‘그냥 잘 하고 오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심적 부담감이 커지더라. 이번에 잘해야 여자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이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해 온 것 보다 더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다.
지난 아시아선수권 선발전 탈락 후 동아시아선수권에서 첫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아시아선수권에 꼭 출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체급 자체를 선발하지 않는 바람에 출전하진 못했다. 만약 거기서 단순히 ‘탈락했다’라고 생각했다면 분명 좌절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원래 할 수 있었고, 잘 할 수 있다’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동아시아선수권에 도전할 수 있었고, (은)메달도 획득할 수 있었다. 메달을 땄기 때문에 이번 세계선수권에 대한 도전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웃음).
말을 들어보면 태극마크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비키니를 포함해 피트니스 선수들은 늘 자기와의 싸움을 벌인다. 그 최상의 결과가 국가대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나 꿈꿔 왔고 내겐 최대 목표였다.
▲ 사진=유연 SNS
첫 국제 대회를 경험한 만큼 이번 세계선수권에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경험이 정말 중요하단 걸 절실히 깨달았다. 사실 국내 대회에서도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동아시아선수권 무대에 오를 당시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너무 긴장됐던 것 같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압도됐다고 해야 하나. 국내에선 느끼지 못했던 떨림이었고, 경기 후 내려와선 내가 어떻게 포징을 취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만약 동아시아를 거치지 않고 세계선수권에 참가했다면 아마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지 모른다. 한 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제 무대) 분위기가 어떤 지 알고 가는 게 다행인 것 같다.
앞서 치러진 세계남자보디빌딩대회 선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텃세가 엄청 심했다고 전해진다. 슬로바키아도 원정인 만큼 텃세가 없을 리 만무한데
당연히 있을 것 같다(웃음). 홈그라운드란 이점도 그들에게 분명 작용할 것이다. 국내 경기에서도 있다면 있는 게 텃세다. 개인적으로 그걸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내가 했던 것 딱 하나다. 속된 말로 그냥 넘사벽이 되야 한다. 텃세가 작용할 수 없을 만큼 우선 완벽한 몸으로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극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슬로바키아의 홈이기 때문에 자국 선수들에게 시선이 더 많이 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홈 팬들도 있어서 분위기 자체가 홈 팀에게 유리하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완벽한 몸은 물론 특별한 자신만의 무언가 있어야만 한다. 무대 위에서 나만 바라볼 수 있게끔. 그게 매력이든, 시선이나 포징이든 특별함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최대 무기는 뭔가
내 마스크가 국제 무대에서 더 먹힐 것이란 얘기를 주변 지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실제 국내 대회를 나가서도 얼굴이 서구적이란 말을 많이 하더라. 이런 부분들도 국가대표로 국제 무대에 나가서 뛰고 싶단 생각을 더 간절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나만의 마스크와 더불어 금발 미녀들 사이에서 흑발이 주는 매력도 잘 어필하고 왔으면 한다.
슬로바키아와 국내 시차가 8시간이다. 컨디션 조절에 있어 시차는 무시 못 할 요소인데
집중력은 좋은 편인데 상당히 둔한 스타일이다. 예전에 공부 할 때 17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간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모르고 있는 거다. 올해 10월에 있었던 Mr. YMCA 대회에서도 분명 체했는데 체한 거를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너 지금 체해서 얼굴이 창백하다’고 말해줘서 그제서야 깨달았다(웃음).
정말 엄청난 집중력이다
하나에 몰입을 하면 내 육체가 피곤하든 어떠한 상황에 있어도 집중력으로 나를 제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시차 같은 경우에도 어차피 경기 생각으로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진 않다. 물론 후폭풍은 있겠지만(웃음). 멘탈적으로 단단하게 무장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유연(幽然)하다: 속이 깊고 조용하다
▲ 올해 국내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유연. 사진=개근질닷컴 DB
10월 YMCA를 끝으로 시즌 오프를 했었다. 갑작스러운 세계선수권 준비로 다이어트에 힘들진 않았나
정말 감사하게도 올해 YMCA를 마지막 대회로 정하면서 세계선수권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
잘 먹지 못하고 있던 터라 몸무게 조절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보통은 선수들이 시즌 오프를 하면 즐거운 먹방(?)을 하는데 YMCA가 끝나고 이직 문제로 한동안 굉장히 바빴다. 새 직장에 적응도 하고 일 때문에 바빠서 먹방은 생각도 못하던 차에 세계선수권 공고가 났다.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이건 나한테 정말 기회구나. 운명이구나’ 싶었다.
세계선수권 준비하면서 도움 준 사람이 있을까
원래도 남에게 의지를 잘 안 하는 성격이다. 국내 대회 다닐 때도 항상 서포터 없이 엄마랑 둘이 다녔다. 옆에서 함께 파이팅 해줘야 힘이 나기보단 조용히 집중하는 성향이다. 특히 이번 세계선수권은 더욱이 나와의 사투를 벌이는 시간인 것 같다. 내 몸의 단점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부족한 어깨를 쌓아 올리고, 잘 갈라진 대둔근을 만들기 위해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소통을 최대한 자제하는 중이다.
올해 정말 긴 시간 동안 시즌을 끌고 가고 있다
4월에 있었던 춘계 대회부터 Mr.&Ms. 서울, 인천광역시장배, Mr.&Ms. 코리아, 동아시아선수권, Mr. YMCA까지 정말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 매 시즌이 짧진 않았다. 하지만 올해가 선수 생활 중 가장 긴 시즌이다.
가장 길었던 시즌만큼 성적도 아주 훌륭한데
힘든 만큼 보람 있는 한 해였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어느 때보다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만큼 세계선수권 메달을 기대해봐도 좋을까
내가 알기론 중국이나 일본은 매년 세계선수권에 여성 선수들을 파견한다. 그 중 예선 통과하는 아시아인은 바늘 구멍에 낙타가 통과할 확률일 만큼 정말 힘들다. 우선은 예선 통과를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만약 TOP6로 결선에 오르면 모든 걸 쏟아 붓고 내려올 생각이다. 동양인 여자 최초로 비키니 시상대에 서는 게 목표다.
마지막 출사표 한 마디
2019년 개인적인 모토가 하나 있었다. 뭐든지 간에 ‘직면하자’였다. 10kg의 무게든, 100kg의 무게든 내게 그 무엇이 주어진다 해도 어떻게든 이겨내고 밀어냈다. 단순히 피하는 게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직면한 과제가 있으면 정면 돌파했다. 그런 부분이 올해 통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성장했고, 태극마크부터 시작해서 이루고 싶던 많은 부분들을 성취한 2019년이였다.
이번 세계선수권도 어떤 난관이 기다릴 진 모르겠지만 피하지 않고 끝까지 부딪혀서 이겨낼 생각이다. 꼭 아시아 최초로 입상의 영광을 누렸으면 한다.
혹시 2020년 모토도 있나
2020년엔 ‘정직하자’가 모토다. 이제 어떤 힘든 일도 피하진 않으니까 정직하게 노력해서 몸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년엔 국내든, 해외든 좀 더 좋은 결과가 뒤따르지 않을까. 정직한 사람은 언젠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고 믿는다. 며칠 남지 않은 세계선수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내년을 향해 있는 힘껏 정직하게 정진하겠다. 많은 응원 부탁 드린다.
▲ 사진=유연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