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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의 ‘꿈과 목표’ 그 마지막 이야기 Pt. 3

등록일 2020.01.09 17:38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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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성환 아내 인스타그램

 

[개근질닷컴] ‘일류’들은 왠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했을 것 같다. 한국 최고의 보디빌더 김성환도 그렇다. 하지만 그도 처음엔 ‘시 대회’ 예선에서 탈락하곤 했다.

 

김성환은 2002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이후 나선 첫 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맛봤던 그는 ‘구력’이라는 시간의 편차를 메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덧 대한민국 정상급 보디빌더가 된 김성환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급하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약점 부위를 보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전국체전과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게 됐다. 어릴 땐 육체미를 위해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디빌딩 자체가 좋아졌다”

 

타고난 균형미에 노력을 가미하니 전국체전과 세계선수권, 그리고 IFBB 프로 쇼까지 적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노력은 그가 운동하는 영상만 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령을 들고 운동해도 ‘스미스 머신’으로 하는 것 같은 정확함. ‘웨이트 트레이닝 정석’과 같은 운동법은 팬들에겐 어느새 교본으로 꼽힌다.

 

김성환의 교과서적인 운동 자세엔 그의 성격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와 대화를 해보면 정말 차분하고 겸손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데 이렇게 주변에서 응원해주는 게 정말 감사해서 언젠간 꼭 다 ‘보답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내가 선수 생활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 든 보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왜 그가 많은 팬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이어 <개근질닷컴>은 김성환의 꿈,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태극마크를 포기한 사연, 그리고 약물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나 자신이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 목표가 올림피아 top5라면, 이 일을 계속하는 건 평생의 내 꿈이고 바람이다”

 


▲ 사진=김성환 인스타그램

 

보디빌딩을 시작한 계기는

 

보디빌딩이라는 것이 중독성이 있다. 건물에 비유하고 싶다. 흙을 붙이고 붙이다 보면 견고해지지만 비, 바람이 불면 또다시 약해져서 무너진다. 그러니까 소홀히 하지 말고 몰두하고 열심히 벽을 쌓아야 한다. 나 스스로 꾸준히 집중해야 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대회를 나가 성적이 잘 나오든 안 나오든 계속하고 싶다’고 느꼈다.

 

그래서 첫 대회는 언제인가

 

2002년도에 보디빌딩을 시작했고 첫 대회는 ‘미스터 울산’이었다. 그 대회에선 예선 탈락을 맛봤다. 그때 트로피를 정말 갖고 싶어 이후 꾸준히 대회 준비에 몰두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보디빌딩 선수가 됐다. 막상 선수가 되고 난 이후 선배님들의 몸을 보니 보디빌딩은 구력이라는 게 확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세월의 편차를 따라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더라.

 

꾸준히 운동하다 보니까 무대 위에서 몸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근육이 디테일하게 몸에 딱딱 붙기 시작하니까 남들 역시 알아보고 몸이 좋다고 칭찬하고, 그게 정말 신기했다. 급하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약점 부위를 보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전국체전과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게 됐다.

 


▲ 사진=김병정 기자

 

대한보디빌딩협회에서 뛰는 동안 실업팀 여건이 좋진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정상급 위치를 지켰는데

 

2012년부터 국가대표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실업팀에서 받는 연봉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세계대회 정상에 대한 염원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하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출전했다.

 

이제 실업팀에서 대우를 받기 시작할 때쯤에, 전국체전에서 여러 가지 사건(도핑적발)들이 계속 터지면서 연봉이 계속 제자리에 머물게 됐다. 보디빌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감수하고 현재 위치에 감사하면서 준비했다. (심각하게) 그런데 어느덧 보디빌딩을 보는 시각이 안 좋아지고 잘 알던 선후배들을 못 보게 됐다. 이런 상황들이 회의감을 느끼게 했다.

 

현실과 이상이 다른 걸까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어도 어느 순간 약간의 슬럼프가 왔다. 몸은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꾸준히 움직이고 있는데 예전처럼 초심과 열정을 쏟아붓지 못하고 있더라.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까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쯤부터 ‘올림피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 같다.  

 


▲ 사진=김성환 아내 인스타그램

 

올림피아 도전은 정말 큰 결심이다. 김성환에게 그 ‘도전에 대한 의지’는 뭘 의미하는 건가.

 

나 스스로 가슴 뛰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세계선수권도 분명 나를 가슴 뛰게 했다. 하지만 이미 75kg, 80kg 체급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땄기에, 좀 더 성취하고 만족하고 싶은 느낌이 생겼다. 세계선수권에서 나 스스로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몇 연패를 이어가는 것이 ‘스스로의 만족도를 높여주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들이 결정적으로 내 도전 정신을 일깨웠다.

 

운동에 대한 평소 스타일이랄까? 김성환의 생각이 궁금하다

 

보디빌딩은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자신의 몸을 만드는데 포커스를 맞추는 운동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운동보다 운동량이 많아야 한다. 고립과 자극, 부하에 따른 근육의 펌핑을 추구하는 운동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계속 대회에 출전하면서 스스로 나만의 운동 스타일을 만들었다.

 


▲ 사진=김성환 인스타그램

 

당신의 운동 모습을 본 이들은 ‘고중량 운동을 굉장히 편하게 한다’는 반응이 많다

 

처음부터 이렇게 운동을 잘했던 건 절대 아니다. 결과물을 잘 나오게 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지속적인 대회 출전을 위해선 부상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식으로 운동을 추가하다 보니 지금의 운동 방식을 설립하게 됐다. 사실 내가 무거운 중량을 많이 다루진 않는다. 근육의 탄성을 주는 데 집중을 하는 편이다. 그렇게 집중해서 하는 모습을 본 분들이 ‘스미스 머신’ 같다고 극찬을 해줘 감사할 따름이다. 무거운 중량보단 안정적인 자세를 추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칭찬해 주지?’라고 의아할 때도 있다.   

 

역시 겸손한 발언이다. 팬들은 과정 속 당신의 ‘겸손함’에 반하고 결과의 ‘훌륭함’에 또 한 번 빠지는 것 같다

 

운동선수니까 성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생각은 예전이나 앞으로나 변함없을 거다. 이 운동을 하면서 과시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보디빌딩은 일반분들과 어우러져서 운동해야 하는 몇 안 되는 종목일 거다. 내가 실업팀에 있을 때 다른 종목 선수들은 ‘팀’과 함께 격리돼서 운동했다.

 

그런데 보디빌딩은 선수가 아닌 분들과 체육관에서 같이 훈련하는 입장이다. 그때 내가 그분들께 ‘이러쿵, 저렁쿵’ 간섭하거나 과시하는 건 절대 불필요 한 일이다. 그저 조용히 자기 운동을 하면 되는 스포츠니까. 그렇게 대회에 출전하고 흘러가는 대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 된다.

 

성적이나 결과에 대해 혹여 답답하고 억울한 게 있더라도 ‘다음 경기에서 증명한다’는 생각으로 쭉 운동했다. 대단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을 하고 있는데도 팬분들이 이런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 사진=김병정 기자

 

이런 김성환과 소통할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많다

 

이번에 프로 도전을 하는 동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팬분들의 응원을 많이 받아 진심으로 감동했다. 팬들의 댓글에 하나하나 다 답글을 달아드리진 못하지만 읽어보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감동을 정말, 정말 많이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데 이렇게 주변에서 응원해줘서 정말 감사해서, 언젠간 ‘꼭 다 보답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 든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운동을 시작할 때 나를 통해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서, 도움이 많이 됐으면 한다.    

 

팬들 외에도 운동하면서 감사한 사람이 또 있다면

 

보디빌딩은 개인 운동이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혼자 하기엔 힘든 운동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선 팬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된다. 그리고 아내. 우리 가족과 아내의 응원과 뒷받침이 없으면 보디빌딩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니까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아졌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편의를 봐주고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정말 고맙다. 내가 성적을 낼 수 있는 건 다 아내 덕이다. 혼자였으면 절대 이렇게 못 했다. 경기에 대한 고민은 늘 와이프와 나누면서 선수로서 나는 조금씩 더 발전하고 있다.

 

부모님과도 많은 대화를 하나

 

부모님은 보디빌딩을 전문적으로 잘 모르시긴 하지만 대화는 많이 한다. 어머님 같은 경우엔 내 주변 선수들 이름도 많이 안다. ‘누구 누구 선수는 이번에 안 나왔니?’이런 식으로.

 

또 장모님하고도 대회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번에 올림피아에서 성적이 안 나오니까 “나갔다 하면 1등만 하는 우리 사위, 이번엔 무슨 일 있었던 거야?”라고 물으시더라(웃음). 가족들 관심이 항상 감사하다. 이 운동은 혼자 하지만, 결국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스포츠다.

 


▲ 김성환과 그의 아내. 사진=김성환 인스타그램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 ‘약물’에 대한 이슈를 빼놓고 현대의 보디빌딩을 얘기할 수 없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의견이 궁금하다

 

그쪽에 있어서 내가 광범위하게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선 도핑 테스트를 ‘하는 대회’와 ‘하지 않는 대회’로 나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엔 도핑 테스트를 하는 단체(대한보디빌딩협회)에 긴 시간 동안 속해 있었다. 정말 많은 분이 ‘도핑테스트를 어떻게든 피할 수 있다’고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중량급 선수들은 도핑테스트를 더 많이 받기에 거의 불가능 하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선수들의 경우 분기별로 ‘어디서 자고, 어디서 운동했는지’를 시간별로 다 체크한다.

 

테스트 과정도 소개해 줄 수 있나?

 

테스트하러 왔는데 세 번 동안 만나지 못한다면 도핑에 적발된 것으로 간주한다. 현장에서 즉시 시료 채취를 거부해도 적발로 간주한다. 이게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 속에서 이뤄진다. 나 같은 경우엔 국가대표가 되고 첫해 정도 빼곤 항상 1년 내내 소재지 정보 제출 및 관리대상자로 올라갔다. 최근 10년 사이엔 아마 내가 가장 많이 대상자로 올라갔을 것이다.

 

외부에선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이 봤을 땐 이런 시스템도 허점이 있다고 느껴지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몇 년 전부터 테스트 기술이 너무 좋아져서 가령 예전에 일주일만 약물을 끊으면 됐던 것이 한 달을 끊어도 도핑을 한 사실이 적발되도록 바뀌었다. 약물로 만든 근육은 한 달이 지나면 이미 빠지고 없다. 그래서 내가 봤을 땐 전국체전이 더 클린해지고 있고,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그런 테스트를 더 받기 때문에 부정한 유혹에 대해 경각심을 다 가지고 있다. 동시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 사진=김성환 인스타그램

 

어떤 스트레스인가?

 

예를 들어서 나는 1년간 도핑 테스트 대상자였지만, 막 커리어에서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열심히, 그리고 보디빌딩을 하는 스킬’을 통해 경기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 많은 분이 오해하는데 지금 전국체전은 허점이 있지 않다. 그 부분은 팬으로서 정말 좋아하고, 존중하고, 인정해줘도 충분하다.  

 

대한보디빌딩협회란 단체에서 나오게 된 과정도 궁금하다

 

나 스스로는 단 한 번도 ‘대한보디빌딩협회를 등지고 나왔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다른 도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 나왔지만 대보협은 나의 고향 같은 곳이다. 하지만 단체가 나눠져 있다 보니까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안타깝다. 진심으로 전국체전이 다시 부흥하고, 실업팀이 앞으로도 그 위상과 명맥을 잘 이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말했는데 내 나름대로는 그와 관련한 꿈도 있다.

 

어떤 꿈?

 

예전에 세계보디빌딩선수권대회에 나갔을 때 오만이란 나라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코치로 경력이 뛰어난 프로 보디빌더가 따라왔더라. 그걸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선수 생활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국가대표로 뛰었던 추억들이 큰 부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프로 보디빌더로 성공해서 그런 방식으로 왕래하고,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 사진=김병정 기자

 

아무래도 IFBB와 IFBB PRO는 국제적으로도 나뉘어 있는 단체이다보니 지금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이유로 쉽지 않겠지만 이런 꿈들은 바라고 있다. 우선 그렇게 되려면 전국체전부터 살아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들이 합심해서 ‘정확한 룰’을 따라서 출전해야 한다. 도핑에 대한 시스템을 잘 짜고 여러 가지 교육 등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정한 저울대를 만들어 놓고, 확실한 제도를 잘 만들어 놓으면 (클린 보디빌딩이) 가능하다. 대보협엔 이 부분 지키기 위한 선수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성환의 최종적인 꿈을 듣고 싶다.

 

우선 구체적인 꿈은 올림피아에서 어떤 종목이든지 ‘탑 5’ 안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 외엔 사실 크게 없다. 난 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언젠가 은퇴를 하더라도 이쪽에 종사하면서 보디빌딩을 계속하고 싶다. 이게 내 꿈이다.

 

어릴 땐 육체미를 위해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디빌딩 자체가 좋아졌다. 목표가 올림피아 탑5라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내 평생의 꿈이고 바람이다.

 

허준호 (hur.jh@foodnamoo.com) 기자 
<저작권자(c) 개근질닷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등록 2020-01-09 17: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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