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병정 기자
[개근질닷컴] 스폰서나 어떤 지원도 없이 달린 길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안다정과 허재우는 ‘대한민국 최초 올림피아 피규어 출전’이라는 역사를 함께 썼다. 그러나 종내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허탈감이 들었다고 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피아 무대는 역시 화려했다. 그 무대 뒤엔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과 서포터, 프로모터, 스폰서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보디빌딩 변방에서 온 한 동양 선수의 자리는 유독 춥기만 했다. 그러나 안다정은 그 외로움을 버텨내고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외로움은 계속 그들을 따라붙었다.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는 현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여자 보디빌딩의 올림피아 길을 개척한 선구자’들이 맞이한 현실은 여전히 춥기만 했다.
개척자들에게 정상의 길을 향해 가는 과정 속 주어진 역경이나 고통들은, 그 길 위에서의 고독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지 않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 사진=김병정 기자
2018 루마니아 프로쇼에서 오버롤을 하고 내려온 안다정을 보고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을 것 같다
재우(이하 재): 다정이가 무대에 내려오는데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스쳐 갔다. 남자 친구와 코치의 입장에서 만감이 교차할 때가 많았다. 늘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그동안의 노력을 어느 정도 보상받은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 대회에서 2019년 올림피아 출전권을 땄으니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나?
2019년 올림피아 무대 이전엔 다른 대회 출전은 없었나
재: 올림피아 출전 전에 5월 18일 열린 뉴욕 프로 쇼에 나갔다. 올림피아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 대회에 출전한 이유는 ‘신데렐라는 없다’라고 생각해서였다. 첫 술엔 아무리 몸이 좋아도, 절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거기 관계자들에게 ‘신예의 등장’을 각인시키기 위해 ‘3대 프로대회 중 하나인 뉴욕 프로 출전’을 결정한 것이다.
좋은 전략이다
재: 그 대회를 위해 다정이를 무리하게 훈련시키지 않았다. 성적에 대해선 내려놓고 경험을 위해 출전을 결정했다. 컨디션 저하 없이 프로 심판들에게 안다정이란 선수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프로쇼에 가보니 *박복임 선수와 전문경 선수도 피규어 종목에 참가했더라. 그때 다정인 ‘이 한국 선수들과 좋은 성적을 가져보자’라는 욕심이 생겼다고 하더라. 이 대회에서 다정이가 7등을 했는데 결과를 너무 아쉬워했다. 그래서 다정이에게 ‘이 대회에 온 목적은 경험이다, 우리가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중요하지 않은 대회였다’고 계속 상기 시켜 줬다.
*박복임-2018 머슬 콘테스트 아일랜드 오버롤, 전문경-2018 IFBB 프로 데뷔
▲ 프로 쇼 루마니아 당시 바디 컨디셔닝. 사진=NPC News Online 공식홈페이지
외국 프로 쇼를 뛰다 보면 같은 종목에 한국 선수들도 만날 때가 있겠다. 서로 왕래가 있나
다정(이하 다): 그런 건 없다. 프로 쇼에서 만나면 인사는 주고받지만 왕래가 있는 사이들은 아니다.
재: 외국에서 만나 같은 국적 프로 선수들이라고 다 왕래가 있진 않다. 선수들끼리도 같은 종목이라고 라이벌이라고 느끼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선 ‘쟤랑 걔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지켜보기는 한다.
자, 뉴욕 프로 쇼를 끝내고 이제 올림피아 출전했다. 소감은
다: 진짜 무대를 딱 보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뭉클하더라. 무대 앞에 서니까 ‘내가 정말 대단한 대회에 왔구나’라고 느껴졌다. 무대 뒤로 가니 스텝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 선수들을 챙기고 있었다. 정말 대우가 좋았다. ‘이런 환경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외국은 정말 ‘머슬(Muscle)’ 쪽의 종목일수록 더 존중받고 있더라.
본인에겐 올림피아 선수들이 연예인 같다고 했다(인터뷰 1편 참조). 그들을 실제 본 느낌은 어땠나
다: 원래 가기 전에는 ‘등수 안에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막상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니까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예쁘고 감탄이 나왔다. 그 체형의 간극을 보니 ‘정말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한다고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수들이 대단했다. 올림피아 무대는 내게 큰 경험과 감동을 줬다.
▲ 올림피아 무대 위 안다정. 사진=NPC News Online 공식홈페이지
14위로 올림피아를 마쳤다. 어지간한 무대니 만큼 ‘첫술에 배부르랴’ 싶다. 그래도 아쉬웠던 점은?
재: 올림피아를 준비하면서 여러 일이 있었다. 상황이 열악했고 우리 둘 관계가 루즈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올림피아 며칠 앞두고 싸우기도 했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는데 상황도 어렵고 지쳐가니까 서로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게 되면서 싸우게 됐다. 다정이가 올림피아 출전을 포기하고 싶었을 정도로 싸움이 심각하게 번졌다. 결국 극적으로 화해해서 다시 심기일전으로 대회 준비를 했지만, 골든타임을 조금은 놓친거였다. 현실적으로 TOP10까지만 목표로 준비했지만, 최상의 컨디션은 만들지 못했다. 아쉽지만 다음에는 더 확실히 준비할 생각이다.
다: 분명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올림피아를 앞두고 재우에게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도 ‘올림피아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견뎠다. 너무 힘들 땐 경기 영상을 돌려보곤 한다. 영상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고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를 모두 마치고 느낀 점이 있었다면
다: 무대를 뛰었단 기쁨만큼 아쉬웠던 점도 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서포터들이나 프로모터가 많아서 선수들이 힘과 응원을 많이 받지만 우리는 재우와 나, 그리고 재우 친구까지 셋밖에 없어 힘이 떨어지는 것? 그런 점이나 지치는 게 있었다.
재: 우린 늘 그래왔듯이 둘이서 티켓팅부터 모든 절차까지 알아서 진행했다. 근데 올림피아를 뛰고나선 14위라는 결과에 대한 아쉬움 보다.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처량하게 다가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경기가 끝나고 힘들었다. 심신이 지쳤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2년간 시간을 투자하면서 무언가 영리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겠단 목적 하나 없이 오직 운동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올림피아란 대회에 달랑 우리 둘만 남은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이란 못난 생각이 들었다.
…
재: 그런 와중에 다정이가 보디빌딩, 그 운동 자체를 힘들다고 느꼈을까 봐 걱정이 됐다. 대회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정말 현실이 너무 와 닿았다. 다정이의 힘들었던 상황은 계속되는 와중에도, 선수로서 끝없이 달려왔는데 올림피아를 무사히 마치고도 변한 것은 없었다. 처음 계획대로 다정이를 명예로운 자리에 올렸지만 힘든 상황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이제 두 선수의 다음 목표는 뭘까?
재: 이제 비즈니스 모델이나 지원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지금의 목표다. 그래야 우리가 계속 올림피아란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다.
▲ 사진=김병정 기자
올림피아 선수란 타이틀을 보고 레슨 문의가 더 많아지진 않았나?
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바 프로일 때 레슨 문의가 훨씬 많았다. 출전권을 따고 나선 레슨 문의가 더 없어졌다.
재: 아무래도 대중들은 올림피아와 다른 대회를 두고 크게 변별력을 갖고 보는 거 같진 않다. 다정이가 이룬 타이틀을 지켜나가면서, 앞으로도 계속 올림피아 도전을 하기 위해선 비즈니스 활동의 발판을 만들어야 하는 게 큰 숙제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최근에 유튜브를 시작해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나도 재밌게 봤다. 반응은 괜찮은가?
다: 이게 운동보다 훨씬 어렵다(일동 웃음). 이렇게 막 나서서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쉽지 않다.
재: 누구나 유튜브는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유명 유튜버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해야 하고 기획된 상황에서 멘트도 잘 하는 방송인이 돼야 하는 게 그 상황에 맞는 롤인데, 이 부분에선 다정이가 갖고 있는 성향이 조금 안 맞긴 하다.
▲ 사진=안다정 허재우의 핵짐TV 캡쳐
안다정 정도의 커리어라면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을 텐데?
다: 외국에도 좋아하는 분들이 있지만 우선 구독자분들은(웃음) 국내를 먼저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 중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까 안다정이 ‘다조릿’ 이란 이름도 쓰고 있다. 무슨 뜻인가
재: 흠. 그게(일동 웃음).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닌데. 내가 다정이를 부르는 애칭 중 하나다. 예전 만났던 사람들에겐 굉장히 무뚝뚝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무시할 때가 많았다. 애정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근데 다정이를 만나고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여러 애칭들로 부르다가 다조릿이 탄생했다. 귀엽게 부른다고 하다 보니까(웃음).
악플도 고민이겠다
다: 악플이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한다. 처음엔 진짜 많이 힘들었다. 그걸 보는 게 힘든데도, 계속 찾아보게 되더라. 지금은 트레이닝이 되어서 많이 괜찮아졌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로 MBC 에브리원 방송에 나가게 됐다. 나만 나온 게 아니고 엄마도 같이 나왔다. 나를 향한 악플은 괜찮은데 부모님에 대한 욕을 쓸까 봐 정말 걱정했다.
또 팬분들이 악플이 달리면 ‘어디에 악플이 올라왔는데 안다정 선수가 못 보게 막아’라고 재우에게 인스타그램 DM(Direct Message)을 보내줄 때도 있다. 그런 부분은 정말 팬들께 감사하고 정말 감동을 느낀다.
▲ 안다정의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방송. 사진=MBC 에브리원 캡쳐
대중들이 여자 보디빌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부모님 세대에겐 더더욱 그렇다. 가족들이 보디빌딩을 한다고 했을 때 반응은?
다: 처음엔 내가 보디빌딩 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하지만 내가 올림피아에도 나가고 열의를 갖고 진심으로 운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이젠 조금 인정해 주신다. 엄마가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기도 하더라(웃음).
그렇다면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다: 대학교 전공으로 사회체육과를 나왔다. 졸업 후 자연스럽게 트레이너 직업을 접하게 돼 시작했다. 어렸을 때 육상도 했고 학창시절 내내 운동이 정말 좋았다. 처음엔 보디빌딩대회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아는 언니가 대회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봤는데 자극을 많이 받아서 ‘머슬 마니아’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됐다.
첫 대회 성적은?
다: 처음엔 비키니와 피규어 두 종목 중복 출전했다. 결과는 비키니 예선 탈락, 피규어 3등이었다.
비키니도 출전했었다니?
다: 그 당시엔 어떤 종목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웃음). 이 분야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앞에서 말했던 아는 언니가 비키니를 항상 나가다가 피규어에 나간다고 하니까 둘 다 나가보고 싶은 승부욕이 생겼다. 그때 내 몸도 굉장히 말랐었다. 그래서 비키니 종목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회가 끝나고 1년 정도 운동하면서 근육이 붙다 보니까 피규어에 더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이후엔 단 한 번도 비키니 종목에 또 도전하지 않았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빨리 알아챈 거다(웃음).
어느덧 안다정은 대한민국 탑 피규어 선수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본인의 길을 따라올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다: (깊이 생각 후) 피규어 종목을 하려는 여성 선수가 많이 없다. 설령 도전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쭉 이어가려면 스타가 되기 위해서 이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진지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보디빌딩이 좋아서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사진=안다정 인스타그램
쉽지 않은 길인 건 분명하다. 두 분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 응원해주는 가족과 핵짐 식구 모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핵짐 식구라고 해봤자 재우와 *지훈이밖에 없지만 이 둘이 없었으면 올림피아 도전은 하지 못했다.
재: 나는 남자친구니까 그렇다고 쳐도 지훈이는 정말 대단한 거지. 지훈이는 우리가 외국에 나가 있어도 센터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지훈이는 정말 지인으로도 동료로도 감사한 존재다.
*방지훈-NABBA WFF 아시아 오픈 클래식 그랑프리
그렇다면 말 나온 김에 허재우는 안다정에게 어떤 존재인지?
재: 나가 있을까(웃음)?
다: 나는 항상 대회 2개월 전엔 재우네 집에서 생활한다. 그동안 식단도 다 관리해주고 내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도록 하나하나 다 신경 써서 챙겨준다. 운동 끝나면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본인은 다시 센터로 출근하고. 본인이 먼저 출근하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서 냉장고에 넣어주는 등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일이 생각날 정도로 그만큼 신경 써준다. 난 정말 쉽게 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재우는 정말 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존재다.
▲ 사진=김병정 기자
그럼 반대로 허재우에게 안다정은
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다정이? 음…(일동 웃음). 뭐라고 해야 할까. 다정이기에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다정이를 제자로만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다. 만약에 다정이가 단지 제자였다면 내가 ‘살 수 있는 선’까지만 한계를 두고 도와줬을 것이다. 다정이는 내게 제자, 여자친구를 넘어 선 존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목표와 꿈을 알려 달라
다: 내년도 마찬가지로 올림피아에 도전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열심히 해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꿈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웃음).
재: 도전은 계속 진행 중이다. 피규어 종목 프로 대회가 유럽이나 미주 쪽에서만 열렸는데 올해는 한국에서도 열린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1997년. 19살의 박세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 도전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주목하던 이가 아무도 없던 때였다. 당시 참가 선수의 국기 게양이 관례였지만 태극기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처럼 국제무대에서 한국 여자 골프의 위상은 미미했던 시기. 하지만 박세리는 LPGA 투어 참가 첫 시즌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황무지에 혼자만의 힘으로 태극기를 꽂은 것이다. 그 커다란 세계에서 작은 동양인이 존재감을 환히 빛내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골프는 이제 국민 스포츠가 됐다. 선배의 뒤를 따른 여자 프로골퍼들도 세계 최강이 됐다.
그 당시 골프와 마찬가지로 현재 보디빌딩이란 종목 또한 유럽, 영미권 선수와 동양인의 간극은 상당하다. 하지만 안다정과 허재우는 간격을 뛰어 넘어서기 위해 ‘오직’ 둘이서 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은 한국 보디빌딩 발전에 분명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안다정은 “내년도 마찬가지로 올림피아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 고독한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